[월요 인터뷰] 미술계 '큰 손' 李회장은‥'신용.뚝심'으로 국제시장 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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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미국의 천재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 전.이 전시를 위해 국제갤러리는 개런티 한 푼 없이 서명 하나로 800억원어치의 작품을 들여와 2만여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보험료만 3500만달러에 이르는 '조안 미첼 전'을 서명 하나로 성사시켰다.
미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이현숙 한국화랑협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다.
신용과 뚝심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그가 경영하는 국제갤러리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아시아 지역 최고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힌 것도 그의 '신용과 뚝심'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이 회장은 그림을 좋아했지만 몸이 아파 미술대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친정 어머니의 권유로 컬렉션에 열정을 쏟았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신윤복 박수근 이중섭 등 인기 작가의 작품 수집은 화랑 경영의 계기였다.
1981년 인사동 초입에 10평 남짓한 갤러리를 열었고,미술시장을 개방한 1989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해외 작가 모세스 전시를 기획했다.
10평 규모의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하기에는 자리가 좁아 지금의 소격동 터를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80평이던 국제갤러리의 소격동 터는 이제 800여평으로 늘어났고 내년 4월이면 500여평 규모의 해외 작가 전문 전시장 '아트센터(가칭)'도 새로 문을 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해외 작가 전시가 취소되는 바람에 수십억원의 환차손으로 빚더미에 앉았던 그는 사업 포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궁리 끝에 시작한 것이 화랑과 접목한 카페와 레스토랑 사업.이 사업으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그는 "위기와 좌절을 겪으면서 '뱃심'을 키웠다"고 회고했다.
"그때 이후 항상 사업 구상에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다"는 그는 "현대 미술시장 1번지인 뉴욕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이를 발판으로 유럽 등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보험료만 3500만달러에 이르는 '조안 미첼 전'을 서명 하나로 성사시켰다.
미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이현숙 한국화랑협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다.
신용과 뚝심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그가 경영하는 국제갤러리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아시아 지역 최고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힌 것도 그의 '신용과 뚝심'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이 회장은 그림을 좋아했지만 몸이 아파 미술대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친정 어머니의 권유로 컬렉션에 열정을 쏟았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신윤복 박수근 이중섭 등 인기 작가의 작품 수집은 화랑 경영의 계기였다.
1981년 인사동 초입에 10평 남짓한 갤러리를 열었고,미술시장을 개방한 1989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해외 작가 모세스 전시를 기획했다.
10평 규모의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하기에는 자리가 좁아 지금의 소격동 터를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80평이던 국제갤러리의 소격동 터는 이제 800여평으로 늘어났고 내년 4월이면 500여평 규모의 해외 작가 전문 전시장 '아트센터(가칭)'도 새로 문을 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해외 작가 전시가 취소되는 바람에 수십억원의 환차손으로 빚더미에 앉았던 그는 사업 포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궁리 끝에 시작한 것이 화랑과 접목한 카페와 레스토랑 사업.이 사업으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그는 "위기와 좌절을 겪으면서 '뱃심'을 키웠다"고 회고했다.
"그때 이후 항상 사업 구상에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다"는 그는 "현대 미술시장 1번지인 뉴욕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이를 발판으로 유럽 등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