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1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황모씨(47).지난해 청담동에 문을 연 퓨전 레스토랑까지 합하면 두 가게에서만 월 2700만원을 버는 부자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을 다니다 해장국집으로 '밥 장사'에 뛰어든 지 20여년.지금은 신림동 5층 빌딩과 목동 아파트 등 보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이 70억원대로 불어났다.

황씨는 지난여름 큰 결단을 내렸다.

둘째인 아들(15)을 미국 뉴저지주의 한 사립 기숙학교에 입학시킨 것.학비와 기숙사비 등을 합쳐 연간 5500여만원이 드는 곳이다.

그는 "우리야 대학을 못 나왔어도 열심히 일해 돈도 벌고 했지만 아들 세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한 한국의 부자들에게 자녀 교육 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외국계 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부자들은 자신이 이뤄놓은 부를 아이들이 잘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자들은 전통 있는 미국과 영국의 사립 기숙학교를 선호한다.

자녀들이 △현지 명문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고 △상류층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며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리더가 되는 데 필요한 매너와 절제하는 생활습관을 교육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YBM시사 유학개발원 복현규 원장은 "미국 동북부 보딩스쿨(기숙학교)은 토플 성적,부모의 직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가별로 할당된 비율 만큼 학생을 선발한다"면서 "5년 전만 해도 한국 학생들 간 입학 경쟁률이 6 대 1 정도였지만 요즘은 30 대 1을 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산 50억원 이상인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경제신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자녀를 유학보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이들 가운데 86.8%는 '유학 보내고 싶은 국가'로 미국을 꼽았다.

국내에서 가르칠 때는 대형 학원보다는 소규모 팀으로 움직이는 학원 강사 등을 통한 '맞춤형 사교육'을 좋아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자들은 대부분 "정당한 부가 평가를 받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부를 관리하는 능력을 터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선 부유층 자녀를 대상으로 어릴 때부터 부를 관리하는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러워 했다.

실제 미국 금융기관 등에서는 세금과 상속,신용관리,리스크 매니지먼트,투자,기부 등을 짧게는 몇 주,길게는 1년에 걸쳐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부모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선 재산다툼을 예방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부자 가족들이 재산의 이전이나 상속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극을 관람한 뒤 배우들과 토론하거나 가족 구성원들끼리 역할을 바꿔 다른 가족 구성원의 입장을 체험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부자들은 자녀들이 유학을 다녀온 뒤에는 유학시절의 여유 있는 생활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자녀들에 대한 돈 관리를 철저히 한다. 특히 60~70년대 부를 쌓은 사람들은 자녀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쓸 만큼만 최소한으로 용돈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PB들은 전했다.

김종민 교보증권 강남 PB센터장은 "일반인들 생각과 달리 자식에겐 공부시킨 뒤 전세자금을 주는 게 전부라고 말하는 부자들도 많다"면서 "돈이 자식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PB담당자도 "부자들은 재산을 물려받을 자식이 게을러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끝까지 재산 규모를 숨긴 채 혹독하게 가르치는 부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증여를 하지 않거나 최대한 미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격언처럼 아끼는 '뉴욕 부자들의 6계명'이 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삶의 의미 강조)' '자기 일은 스스로 한다.(가정부를 멀리 하라)' '용돈은 부족하게.(달라는 액수보다 적게 준다)' '재산에 수반된 의무를 주입시킨다.' '며느리와 사위에게 돈 문제를 확실히 한다.' '재산은 적당량만 물려준다.'

자녀들에게 교육 기회는 충분히 주되 돈에 함몰되지 않도록 고심하고 있는 게 한국 부자들이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