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22일 총파업 현장은 썰렁했다. 전국 단위사업장 노조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등 정치적 성격이 짙은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총파업 일정 차질은 물론 민주노총의 향후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총파업에 앞서 민노총은 찬반투표를 한차례 연기하면서까지 조합원들의 투표참여를 독려했지만 참여율이 과반수를 겨우 넘어서 이번 총파업의 투쟁열기 저하는 예견됐던 일이었다. 상황이 이처럼 불리하게 돌아가는 데도 민노총 지도부는 이날 무리하게 총파업을 단행함으로써 향후 단위사업장 노조의 상급단체 이탈현상은 물론 국민적 비난여론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민노총 투쟁의 최대 동력원인 현대자동차 노조는 당초 전면파업 계획을 바꿔 주간조 근로자들만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이고 야간조는 정상근무에 들어갔다. 노조는 23일 금속산별 완성 대의원대회 개최 등 당초 예정된 산별전환 일정 때문에 부득이 민노총 총파업에 힘을 보태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민노총 정치적 파업에 대한 노조원들의 강한 반감이 노조집행부의 투쟁의지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욱이 현대차 노조는 올 들어 지난 2월28일 비정규직 보호법안 관련 6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모두 7번째 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6월과 7월 사이 임금협상 과정에서 벌인 파업을 제외하면 나머지 6번은 모두 민주노총의 지침에 의한 정치파업인 것으로 나타나 이번에 또다시 정치성 전면파업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한일이화,덕양산업,세종공업 등 울산지역 현대차 협력업체 노조들도 산별전환을 앞둔 금속연맹 소속이어서 울산발 파업열기는 총파업 초반부터 크게 가라앉고 있다.

한편 현대차는 올 들어 노조파업으로 생산차질액이 모두 1조46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노조의 줄파업 폭탄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부품협력업체들과 울산시민들은 "울산을 아예 파업천국으로 만들고 있다"며 현대차 노조와 민노총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울산 효문공단 내 현대차 협력업체의 한 간부는 "노동계의 정치,사회적 요구에 왜 기업들이 파업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며 "이러고서도 일자리 운운하며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반대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현대기아차협력회 이영섭 회장은 "그렇지 않아도 환율과 유가,원자재가 등 3중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노동계까지 이렇게 파업에 나서 기업들은 큰 곤경에 처해있다"며 "이번 정치파업은 명백한 불법파업으로 근로자들의 고용만 불안하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대우정밀 등 금속노조 중심의 20여개 사업장 3000여명이 파업에 참가한 가운데 협력업체와 비번자 중심으로 공장은 계속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의 핵심인 철도노조,화물연대 등과 지하철노조 등이 전면파업에 나서지 않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우려했던 물류대란은 빚어지지 않고 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