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1년여 앞둔 요즘 정치권은 5년 전 이맘 때와는 격세지감이다.

한나라당이 정당지지율이나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여당(당시 민주당)을 앞서가는 추이는 유사하나 격차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벌어진 상태고,야당의 단골메뉴였던 대통령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을 여당이 요구하고 야당은 "탈당하면 안 된다"고 말리는 상황이다.

이라크 파병동의안과 출자총액제도 등 주요 정책에서 정부편을 드는 것도 여당이 아닌 한나라당이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이다.


5년 전 이맘 때만 해도 이인제·노무현 후보 등 여당 내 유력 예비주자들은 '김심'(金心·김대중 당시 대통령) 읽기에 분주했다.

대선전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심의 파괴력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 전 대통령을 대놓고 공격하는 이른바 '차별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정치여건은 딴판이다.

여당의 예비주자들은 노무현 대통령 눈치를 보기는커녕 아예 원색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실패'로 규정,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노 대통령이 반대하는 통합신당 창당을 앞다퉈 추진하겠다며 반기를 들었다.

아예 "대통령은 정계개편 추진 과정에서 빠져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 9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은 확 달라진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나서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거국내각을 구성하라"고 정부에 촉구했고,한나라당은 "탈당해선 안 된다"는 논평을 서둘러 냈다.

5년 전은 물론 지난해 이맘 때만 해도 거국내각 구성을 주장한 것은 바로 한나라당이었다.

이런 양상은 노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무관치 않다.

민심이반이 가속화하면서 최근 노 대통령 지지율은 2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여당 일각에서 "노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것은 이의 연장선상이다.

시간이 흘러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하면 여당의 차별 움직임은 한층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 내에서 이라크파병 연장동의안에 반대하며 의원 22명이 철군촉구결의안을 내고 90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철군계획서 제출을 요구한 것이나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믿을 수 없다며 독자적인 안을 만들겠다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이런 기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이나 당 지지율에서 한나라당과 여당 간 격차는 한층 더 커졌다.

2002년 대선 1년 전인 2001년 11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내 1위를 달렸던 이인제 후보는 15% 정도의 지지율로 한나라당 유력주자였던 이회창 후보에게 약 10% 뒤졌지만 최근 조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지지율 1∼3%대로 한나라당 유력주자의 10분의 1 정도에 머물러 있다.

당 지지율 격차도 5년 전 10%포인트 정도에서 30%포인트로 벌어졌다.

5년 전 이맘 때 여당(민주당)은 대선주자들이 경선준비에 착수했던 반면 지금 열린우리당은 민심이반에 따라 당 해체를 전제로 통합신당 추진을 모색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