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제조업체일까,서비스업체일까. 아니면 금융회사일까. 10년 전만 해도 GE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체였다. 그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과 GE의 인연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도 과연 그럴까.

GE의 제품판매 자체가 감소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비중은 10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금융부문(GE Capital Services)이 21세기 들어 전체 매출액 비중에서 제품판매를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기준 GE의 매출액은 금융,제품,서비스 순이다. 그러니 GE를 금융회사로,서비스회사로 불러도 틀린 게 아니다.

일본 노무라연구소는 이런 변화를 글로벌 제조업체의 진화(evolution)로 해석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품질(성능)과 가격에서 제품력(연구개발)으로,그리고 제품력에서 서비스업으로 이익확보 방법을 진화시켜 왔다는 얘기다. 노무라연구소는 2000년대 한국 기업은 품질과 가격에서 이익을 확보하고 있고,일본 기업은 1980년대 이전에는 한국과 같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제품력으로 이익을 확보하는 한편 서비스 사업에도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미국기업은 서비스업과의 융합으로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관찰이 아닐 수 없다.

외신들이 IBM의 변신을 전하고 있다. 두 가지다. IBM이 리먼브러더스홀딩스와 함께 1억8000만달러의 벤처펀드를 조성해 중국에 투자키로 했다는 게 하나고,씨티그룹 컨소시엄에 참여해 중국 광둥개발은행의 지분 5%를 인수할 계획이라는 게 다른 하나다. 이를 두고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누구는 IBM이 100년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말한다. IBM이 투자회사로 변신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IBM이 단지 주력인 IT분야를 강화하려는 포석일 수도 있을텐데 이런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IBM은 하드웨어 회사일까,소프트웨어 회사일까. 아니면 글로벌 IT서비스 회사일까,투자와 금융회사일까. 10년 전만 해도 IBM은 하드웨어가 주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IT서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2004년 기준 매출액은 글로벌 서비스,하드웨어,소프트웨어,글로벌 금융,그리고 기업투자 순이다. 노무라연구소의 관찰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런 발전궤적으로 보면 금융과 기업투자가 향후 큰 비중으로 늘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융합에 이어 산업과 금융도 융합이 뚜렷하다. 유통 자동차 전자 통신기업들의 은행업 진출이 활발하다. 까르푸(프랑스) 테스코(영국) 이토요가도(일본) 다임러크라이슬러(독일) 등이 그런 사례다. 이것이 이 시대의 도도한 '기업진화의 알고리듬(algorithm)'일지 모른다.

이런 진화 알고리듬을 정부는 아는지,모르는지.'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정부는 언제까지 만고불변의 이념처럼 떠받들 것이며,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라고 했더니 중핵기업 출자제한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정책결정자들,특히 규제당국은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다양성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