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의 정책은 장기적인 경제 성장(long-term economic growth)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배로 교수는 지난 8∼10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HR포럼 기간 중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대담을 갖고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세계 경제 불균형,한국의 경기침체와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각종 경제 현안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민간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유로와 같이 동북아에도 단일 화폐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정택 원장=한국은 점점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세계 경제 전망,특히 미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에 관심이 많다.

○로버트 배로 교수=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최근 미국에서는 고용이 늘어났고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건설경기가 하락하는 등의 영향으로 내년에는 성장률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특히 고용이 늘고 있어 소비 심리도 나아질 것으로 본다.

○현 원장=세계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배로 교수=아시아가 계속해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가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유럽에 대해선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잘못된 정책을 쓰고 있다.

남미는 15년 전만 해도 전망이 좋았는데 최근에는 칠레와 멕시코 브라질 정도를 제외하면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현 원장=세계 경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관심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로부터 발생하는 세계 경제 불균형이다.

과거엔 일본이 그랬지만 지금은 중국 같은 아시아 개발 도상국가들이 엄청난 경상 흑자를 내면서 그 돈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위험한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나?

○배로 교수=쌍둥이 적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재정적자는 많이 해소됐으며 현재 상황에서 재정적자는 그다지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경상적자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매우 큰 게 사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어느 한 가지가 맞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역시 중국일 것이다.

중국은 싼 가격에 좋은 제품들을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의 삶은 개선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이런 행복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단기적인 현상이다.

중국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싼 가격에 수출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불균형은 스스로 바로 잡힐 것으로 본다.

특히 시장이 금리나 환율 등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다.

정부가 문제를 풀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정말 위험하다.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가 보호무역 쪽으로 움직이면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현 원장=KDI는 한국 경제가 내년에 4.3%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의 5.0%보다 낮아지는 수치다.

여기에 북핵 같은 추가적인 악재도 있다.

고유가,환율도 문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정확대,금리인하 등을 통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로 교수=정부 정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 맞춰져야 한다.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사용돼야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재정부문에서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지출을 늘리는 건 생산적이지 않다.

정부가 공공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지출을 늘렸다고 해서 고용이 늘고 경기가 좋아졌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

정부의 역할은 장기적인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제도와 규제,세금 등 장기 경제성장을 위한 룰을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 정부는 자본주의적이고 성장 위주의 정책을 썼다.

그런데 1998년 이후 소득분배와 복지 확대 쪽으로 정책이 변했다.

이는 한국인들과 한국 경제에 해롭다.

과거 정부의 시각이 더 옳았다.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선 시장 친화적이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현 원장=한국인들은 현재 경기가 좋지 않다고 인식해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특히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과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동시에 요구한다.

예를 들어 기업지배구조,수도권규제 철폐 등을 이야기하면서 금리에 대한 주장도 내놓는다.

특히 금리와 관련해선 몇 주 전 북핵 사태가 터졌을 때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니까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로 교수=(정부가 경제에 관여해야 한다는) 정치경제학적인 주장은 나라마다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미국으로 치자면 보호무역주의자들의 주장이 그렇다.

그들은 관세를 올려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든지,외국인들로부터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한국 사람들의 주장이 미국 보호무역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장기적인 경제 성장에 무엇이 이로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한국 부동산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어떤 정책적 조언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현 원장=장기 성장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 한국은 1980년대 성장률이 8∼9%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평균 성장률이 4%대로 떨어졌다.

물론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일랜드나 싱가포르도 성숙한 경제다.

이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성장률은 여전히 낮다.

○배로 교수=말씀하신대로 한국이 부자가 될수록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1인당 GDP를 비교하면 아직 미국의 절반에 그친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장기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선 축적되는 요소들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적 자본의 질,저축률(한국은 전통적으로 저축률이 너무 높긴 하지만) 등이다.

특히 교육을 민간에 개방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한 가지는 금융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과거에 한국 정부가 국내의 특정 금융회사를 지원한 역사가 있다.

이것은 문제다.

해외의 강한 금융회사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으면 안 된다.

동북아에서 통화를 통합(Currency Union)하는 것도 성장률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단일 화폐는 무역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는 중국이지 미국이 아니다.

○현 원장=외환위기 당시 통화 통합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있었다.

이후에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한·중·일은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와 같은 통화를 만든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배로 교수=라이벌이라는 말이 국가 간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건 더욱 긍정적이다.

사실 국가 간 협력이라는 말은 독점을 떠올리게 한다.

통화를 통합하되 국가 간 경쟁은 계속해야 한다.

물론 당장 통화 통합이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중국이 환율이나 금융 시장 등의 분야에서 더 개방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면 유로는 무역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갈등이 많이 생기는 건 국가 간에 재정 정책뿐 아니라 사회 정책까지 통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통합은 긍정적이지 않다.

이는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런 점에서 유럽의 사례는 동북아에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현 원장=일부 한국인은 한·미 FTA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격렬한 시위도 있었다.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에 멕시코와 캐나다,심지어 미국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로 교수=NATFA는 멕시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멕시코를 구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1995∼1996년까지 멕시코에는 금융 시스템조차 갖춰지지 않았었다.

NAFTA 이후 멕시코는 수출도 엄청나게 늘었다.

미국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실 그다지 의미있는 변화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FTA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얘기했는데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 경제에 있어서 자유무역은 매우 중요한 의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무역 확대로 많은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미국에도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고임금 노동자 등이 그러하다.

보호주의로부터 혜택을 입었던 분야의 사람들이 무역 자유화에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한·미 FTA가 한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보다는 한국에 훨씬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사실은 미국 의회가 한·미 FTA를 인준할지가 더 걱정이다.

○현 원장=글로벌HR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배로 교수=가장 핵심적인 건 인적자본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교육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교육 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정부가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똑같은 프로그램을 제공받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

교육시스템에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뿐 아니라 초중등 학교에도 시장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현 원장=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빈부 격차가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목표는 항상 대비되는 것인가?

○배로 교수=교육이 공공재냐는 질문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철학적인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정부가 교육에 대해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는 있지만 꼭 제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교육에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부가 교육 시스템에 독점적인 권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 원장=한국 정부가 경제 성장보다는 분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정부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

특히 세계화,디지털화,지식기반경제가 확대될수록 불평등 문제가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배로 교수=중국에서 도농 간의 빈부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불만조차 제기할 수 없다.

한국의 상황은 중국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좋다.

불평등이 적을수록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더 활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리=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 로버트 배로 교수는... - 26세에 하버드 박사...노벨경제학상 1순위 ]

로버트 배로 교수는 전형적인 공화당 지지자며 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자유무역과 경쟁이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는 보수주의자답게 미국의 청교도정신이 경제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펴와 학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배로 교수는 몇 년 전 부인인 레이첼 매클레리 박사와 함께 종교와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색적인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 결과는 "종교적 믿음이 정직,근로윤리 등으로 이어져 경제 발전을 촉진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철학도 시장경제 논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의 교육평준화 정책에 대한 시각이 곱지 못하다.

그는 20대부터 '천재' 소리를 들어왔던 경제학자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26세 때다.

통화와 재정분야 연구의 일인자로 통화 재정과 관련된 그의 연구는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배로 교수의 저서로는 '경제성장의 결정요소''거시경제정책''신성(神聖)한 것은 없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