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 교신해 '현재'와 호흡하는 디자이너.예술적인 성취와 브랜드 사업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박윤수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회장(52)을 설명하는 말로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포인트 컬러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색채의 마술사',장식적인 요소 없이도 충분히 멋진 옷을 만들어내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등 그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박 회장은 "내가 만든 옷이 동시대를 사는 대중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해왔다"며 '대중과의 호흡'을 유독 강조한다.

박 회장은 박항치 디자이너와 함께 1987년 시작해 33회째 열리고 있는 SFAA 컬렉션에 '개근'한 두 명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딴 개인 의상실과 백화점을 합해 10개의 매장에서 한 해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의 패션쇼는 지난 8~10일 열린 '2007 봄·여름 SFAA 컬렉션'의 개막 무대를 장식했다.

컬렉션은 디자이너가 다음 시즌에 유행할 옷들을 6개월 미리 선보이는 패션계의 축제다.

6개월마다 열리는 컬렉션에 40~50벌의 새로운 옷을 선보이려면 준비 기간만 3~4개월은 걸린다고.박 회장의 경우는 이런 작품활동 외에 매장에서 선보일 옷까지 별도로 디자인해야 한다.

그 스스로도 "한번 해보이겠다는 오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오기는 1978년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찾아간 국제복장학원 시절에 생겼다고.한양대에서 미술을 전공해 그림 그리는 데는 자신 있었던 그였지만 복장학원에서 한 달 동안 배운 것은 바느질밖에 없었다.

"온통 여성들 뿐인데 그 사이에 껴서 대학까지 나온 남자가 미싱을 돌리고 있자니 처음엔 낯이 뜨거워 견디기 힘들었죠." 하지만 박 회장은 오기로 2년을 버텨 결국 1980년 중앙디자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패션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198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이너 브랜드 '박윤수'를 론칭하며 패션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현재는 서울 청담동의 직영매장과 서울,경기,부산,대구 등지의 백화점 매장을 갖고 있다.

이현재 현대백화점 디자이너 브랜드 바이어는 "박윤수의 옷은 컬러와 디테일에서 다른 브랜드를 한 발 앞서 이끌면서도 너무 튀지 않고 품격이 있다"며 "그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있는 30~40대 고소득층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디자이너가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팔리는 옷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컬렉션 무대에 올릴 '작품'과 매장에 내놓을 '상품'은 그 출발부터 디자인의 개념이 약간 다릅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마음껏 뽐내다 보면 지금 동시대를 사는 대중의 취향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거든요.

컬렉션 무대를 통해서는 제가 꿈꾸는 패션의 미래를 선보이고,매장에서는 당장 소비자가 입고 싶어지는 옷을 내놔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둘 사이가 완벽하게 괴리된 것은 아니라고.그가 보여주는 패션의 '미래'는 조각조각으로 나뉘어져 상품기획에 활용된다.

"이번 컬렉션에서 저는 여성들 어깨의 볼륨감을 강조하는 옷들을 여러 벌 선보였습니다.

색깔은 작년 것보다 선명한 노란색과 녹색,자주색을 주로 썼구요.

소품은 귀족적인 골드컬러로 통일했습니다.

이런 컨셉트를 '톤 다운'해 보통의 여성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데 응용하는 것이지요."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