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신부의 자태.여성미(美)의 결정체로 꼽히는 이 모습을 그릇에 담아낸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서연화 한국도자기 수석 디자이너(37)가 디자인한 도자기 브랜드 '모던 브라이드'에 답이 있다.

'모던 브라이드'는 한국도자기가 혼수용 시장을 겨냥해 2004년 선보인 그릇세트.세련되고 감각적인 백색 컬러와 고급스러운 질감을 앞세워 출시 후 지금까지 그릇세트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기존 도자기들은 꽃무늬 일색의 중·장년 취향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어요.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의 제품이 없었죠.이 틈을 파고들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모던 브라이드입니다."

모던 브라이드는 과거 주로 부모가 사다주던 혼수용 그릇세트를 예비신부들이 직접 고르는 소비추세에 발맞춰 탄생했다.

서 수석디자이너를 비롯한 한국도자기 디자인팀과 영업팀 직원들이 한 달 동안 머리를 맞대면서 짜낸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서 수석디자이너는 모던 브라이드의 컨셉트를 젊은 여성들의 취향에 맞춰 '모던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절제된 미(美)'로 설정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컨셉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고심하던 중 모던 브라이드가 혼수용 제품이란 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웨딩드레스를 디자인의 모태로 삼기로 한 것."모던 브라이드의 컨셉트에 잘 부합하면서 예비신부들의 결혼에 대한 기대감에도 어필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는 온갖 결혼 관련 잡지들을 탐독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웨딩드레스 판매점을 직접 찾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비교해보고 시장에서 온갖 원단을 구입해 각각의 느낌을 분석했다.

그는 처음에 전체 모양은 웨딩드레스 허리 윗부분 라인을 따오고 겉면 소재로는 백금을 사용,은백색으로 고급 이미지를 극대화한 디자인을 내놨다.

그러나 백금을 넣을 경우 식기세척기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수 없어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내부 반대의견에 부딪쳤다.

그는 다시 새로운 소재 발굴에 나섰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한국도자기에서 자체 개발한 '펄'이란 소재.이 소재는 백금처럼 광택을 내고 고급스런 느낌을 주면서도 금속이 아니어서 식기세척기나 전자레인지에 모두 사용이 가능했다.

서 수석디자이너는 또 웨딩드레스의 느낌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화이트 엠보'라는 기법을 제품에 적용했다.

이 기법은 시각적으로 하얀색을 돌출시켜 웨딩드레스에 흰 자수가 놓여져 있는 듯한 느낌을 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모던 브라이드는 예비신부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던 브라이드는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51억원의 매출을 올려 회사 전체 매출의 14.5%를 차지했다.

이 회사 단일 브랜드로는 가장 큰 규모다.

박희면 한국디자인진흥원 본부장은 "모던 브라이드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객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며 "웨딩드레스라는 서구적인 소재를 썼으면서도 동양적인 미(美)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서 수석디자이너가 한국도자기에 입사한 것은 2002년.이화여대 생활미술과를 1992년 졸업해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가진 첫 정식 직장이었다.

대학 동기 가운데 도자기 디자이너는 그가 유일하다.

"제가 그릇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미국 유학 시절에는 그릇 사모으느라 생활비가 빠듯할 정도였죠.지금도 집에는 그때 사모은 그릇들이 잔뜩 쌓여 있어요."

그도 처음에는 풋내기 디자이너 시절을 겪었다.

미국 유학 경험을 토대로 처음 야심차게 내놓은 도자기 홈세트가 시장에서 참패한 것.외국 그릇처럼 화려하게 꾸민 디자인이 소박한 한국 밥상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수요와 동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때 이후로 모든 디자인을 영업팀 직원들과 긴밀히 협의해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자기 디자인 작업은 연구개발팀과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자기 디자인 특유의 '기술적 한계' 때문이다.

"표현에 있어 제약이 많아요.

여러 재료를 가져다 붙이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연구개발팀과 충분한 의사소통이 없으면 실현 불가능한 디자인이 나오게 되는 거죠."

서 수석디자이너는 현재 모던 브라이드 브랜드 후속 디자인을 기획하고 있다.

기존 웨딩드레스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좀더 젊은 감각을 덧붙인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욕심이 있다면 모던 브라이드가 롱런 상품이 되는 것이에요.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 수십년 뒤에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다면 그것처럼 기쁜 일이 어딨겠어요.

영광이죠." '어떤 디자인을 소비자들이 더 좋아할지 고민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서 수석디자이너의 바람이다.

글=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