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를 다룬 영화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유괴는 관련 인물들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이끌어 스릴러와 잔혹극 양상으로 고착화시키기 십상이다.

또한 작품성이 뛰어나더라도 자식을 둔 30대 이상 관객들의 거부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했던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대표적이다.

김태윤 감독의 '잔혹한 출근'은 이런 실패를 거울 삼아 유괴를 코믹하게 풀어낸 영화다.

코미디와 스릴러의 결합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난한 편이다.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도 무겁지만은 않다.

극중 선량들은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유괴 소동은 가족애를 재다짐하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동철(김수로)과 만호(이선균)는 엄청난 사채를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고생 태희(고은아)를 유괴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시각,동철의 어린 딸도 유괴당하고 돈을 요구받는다.

이제 동철은 사채 상환 때문이 아니라 자기 딸을 찾기 위해 인질극을 성공시켜야 한다.

유괴범의 딸이 유괴되는 '이중 유괴' 설정은 파격적이다.

적어도 국내외 주요 유괴 영화들에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유괴의 전말은 엉성하게 묘사돼 있다.

치밀한 계획과 섬세한 상황 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플롯이 강조되는 스릴러라기보다는 캐릭터를 내세우는 코미디에 가까워졌다.

상식을 벗어난 조역들은 코믹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공범 만호는 유괴범답지 않게 나중에는 자꾸 꽁무니만 빼려 하고 인질이 된 태희도 유괴범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태희 아버지(오광록)의 무표정한 얼굴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동철의 캐릭터가 이색적이다.

그는 유괴범이지만 관객들의 동정을 얻는다.

어쩔 수 없이 '몹쓸 짓'에 가담했기 때문인지 유괴한 태희에게도 부드럽게 대한다.

그리고 딸을 되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부성애까지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나쁜 인간은 유괴범이 아니라 사채업자 주백통(김병옥)이다.

그는 동철과 만호에게 살인적인 이자를 강요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주백통에게 쩔쩔 매는 동철과 만호의 모습에서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직장인들의 비애가 읽혀진다.

11월2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