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자신의 욕심도 있겠지만 그의 브랜드 가치를 알아본 기업들이 '모셔가기' 위해 '혈안'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앙드레 김'이라는 이름이 갖는 가치는 2002년 4월 출시한 속옷 브랜드 '엔타르카'와 2004년 6월 내놓은 '앙드레 김 골프웨어'가 성공을 거두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올해 출시한 삼성의 김치냉장고 '하우젠 아삭'은 지난 10일까지 판매량을 기준으로 4종의 하우젠 제품 가운데 약 3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 17일 신사동에 있는 그의 의상실에서 만난 앙드레 김은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와 방문객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는 "의상 디자인 외에 다른 일들을 많이 하다보니 이렇게 바쁘다"며 인터뷰의 운을 뗐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이유가 있나요?

"패션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디자인의 세계를 추구하는 건 글로벌 추세입니다. 웬만큼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이 향수 산업에 진출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모든 아이템을 다 디자인 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는 모르는 분야에 관한 호기심이 엄청난 사람입니다. 이런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루에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해 신문 17개를 읽고 있습니다. 아직도 디자인하고 싶은 분야가 많습니다."

-생활가전은 그동안 해오던 의상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실용적'이어야 하는 분야인데,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우리나라는 1960년 대 초만 해도 국민 1인당 소득이 100달러도 안됐습니다. 한국산 가전제품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냉장고의 색깔도 때가 덜 타도록 회색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기술력과 함께 디자인에 신경써야 할 때입니다. 아이콘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그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입니다. 이제는 기능에 디자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에 기능을 맞춰야 하는 시대입니다. 생활가전도 그 디자인에 따라 앤틱(antique·골동품)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세탁기를 거실에 놓고,냉장고를 침실에 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인테리어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제품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값어치를 산정할 수 없을 정도의 명품이 되는 겁니다."

-명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의식 수준과도 관계가 있다고들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안목은 어느 정도라고 판단하는지요?

"열기가 대단하죠. 미국이나 유럽에서 오페라를 볼 때와 한국에서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관객의 연령대입니다. 오히려 그쪽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요. 우리나라 공연장을 가보면 의외로 젊은 친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오페라가 의식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예술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줄 필요는 있다고 봐요. 제가 생활가전 디자인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냉장고,집안의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일상 생활 속에서 예술적인 감각을 기를 수 있게 하자는 거죠."

-사람들이 디자이너하면 앙드레 김을 떠올립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디자이너의 기반이 약하다는 뜻이라고 보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패션의 역사가 짧아요. 본격적인 패션의 시대는 1945년 해방 이후죠. 그 이전에는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가 전부였습니다. 전 한국 디자이너들의 역량의 문제라기보다 패션 디자인 역사가 짧은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독창적인 것보다 너무 외국의 트렌드를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경쟁력이 생기질 않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인지.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고 작품을 만들면 좋겠어요.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죽이지 않으면서 말이죠. 사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자면 트렌디한 것을 따라하는 것이 좋아요.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죠. 나같은 경우는 너무 창의적인 작품만을 추구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돈을 벌지 못했어요(웃음). 1962년부터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지만 내 건물에서 의상실을 운영하게 된 건 2000년 들어서였습니다."

-선생님의 말투는 '앙드레 김의 가장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것은 사실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영어가 더 품위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이고 그래서 늘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패션쇼에서는 옷보다 거기에 출연한 연예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작품이 연예인에게 묻힌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저는 옷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남과 사랑,이별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야기를 옷 안에 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를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지요. 그들의 연기력으로 제 작품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과 연기력,옷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무대로 패션쇼를 장식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저는 단조로운 행사는 원치 않습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블록버스터라고나 할까요."

-앞으로 활동 분야를 어디까지 넓혀나갈 생각입니까?

"더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휴대폰,노트북에서부터 조경에 이르기까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휴일에는 제 의상실 직원들을 위해서 쉬는 거죠. 저 자신만 본다면 휴식시간도 아까울 정도입니다."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