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계약 당시 피보험자 본인의 서면 동의가 없으면 계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를 대신해 계약서에 서명하고 배우자가 전화상으로 동의하는 등 나중에 추인하더라도 그 계약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보험모집인인 김모씨는 1997년 남편을 주피보험자로 하는 계약서에 남편 대신 서명해 자신이 근무하는 보험회사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김씨 남편은 계약 체결 1개월여 만에 교통사고로 다쳐 517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남편이 이혼 다음 해인 2002년 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 도중 숨지자 김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1억5000여만원의 보험금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 3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하지만 "상법(제731조 제1항) 상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 계약은 타인의 서면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김씨 남편은 보험 계약 체결 다음날 보험사의 실명 확인 과정에서 아내의 서명은 자신의 동의 하에 한 것이라는 추인도 했지만 재판부는 "서면으로 동의의 의사 표시를 해야 하는 시점은 '보험 계약 체결시까지'"라며 "이미 무효가 된 계약을 추인했다고 하더라도 계약이 유효가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 보험회사는 김씨 남편이 처음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보험사가 서명을 확인하고 보험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보험자 살해의 위험성 외에도 피해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타인의 사망을 사행계약상의 조건으로 삼을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입법 취지라는 설명이다.

실제 상법도 당초 1991년 이전에는 단순한 동의만 요구했지만 실적 경쟁 등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1991년 서면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규정을 개정했다.

이와 관련,임재철 변호사는 "피보험자가 스스로 동의의 의사를 결정하고 서면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 등 단체가 소속 직원을 피보험자로 하는 단체보험의 경우에도 단체 구성원의 추정적 승낙만으로 보험계약 체결이 가능하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