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은 매출 상승 곡선입니다."
CI(Corporate Identity:기업 통합 이미지) 전문 디자이너로 현대카드의 기업 로고를 비롯 '현대카드M''현대카드 블랙''현대카드 퍼플' 등의 디자인을 맡아 '대박'을 이끌어낸 오영식 토탈 아이덴티티 (TOTAL IDENTITY) 대표(41)가 밝히는 디자인의 핵심 포인트다.
오 대표는 2003년 신세대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톡톡 튀는 디자인의 '현대카드M'을 내놓으면서 신용카드 업계에 '감성 디자인 붐'을 일으킨 장본인.오 대표는 "신용카드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튀는 사고로 차별화를 꾀하는 작업이지만 창의성 못지않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법이 중요하다"며 "성공적인 카드 디자인은 철저히 시스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영식 대표는 지난 4월 현대카드의 용역을 받아 화폐 디자인 기법을 활용한 카드 디자인을 선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스위스 화폐 디자인을 응용한 것.뉴 알파벳 시리즈도 함께 내놓았다.
수많은 점과 선으로 구성된 지폐처럼 각기 다른 무늬가 반복돼 있는 게 특징이다.
16회 이상 실크 인쇄를 거듭해 완성된 이 디자인은 멀리서 보면 여러 개의 층을 확인할 수 있다.
오 대표는 '디자인은 시스템'이란 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논리가 없으면 디자인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카드 디자인에 들어간 선의 굵기와 길이를 얼마로 할 것인가를 수학공식처럼 풀어내야 합니다.
이런 과학적인 기법이 총동원돼 하나의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가 카드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현대카드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였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경영을 맡은 직후인 2003년 5월 영입돼 비주얼 코디네이션 팀장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책을 맡았다.
임무는 카드 비주얼의 차별화였다.
명확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미션이었다.
성과는 3개월 만에 나왔다.
그해 8월 가지각색의 색상을 입힌 카드 디자인을 고안했다.
정확히 말하면 빛깔이란 표현이 정확하다.
색깔로 규정하기 어려운 톤이었기 때문이다.
골드 일색이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지갑 속의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아울러 기존 카드의 절반 크기인 미니 카드도 만들었다.
변화를 통해 고객의 편의와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욕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오 대표는 당시 상황을 전한다.
미니 카드가 히트를 치기 시작할 때쯤 오 대표는 정태영 사장으로부터 현대카드의 CI를 바꿔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모회사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어려운 과제였다.
한 달 가까이 한 고민 끝에 내린 해법은 서체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파격을 주는 방법으로 'HyundaiCard'라는 글씨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오 대표를 비롯 10여명의 팀원이 혼신의 노력을 통해 2004년 1월 새 CI를 발표했다.
이때 만들어져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현대카드 CI는 그 독특한 글씨체 때문에 국영문 모두 한글 소프트웨어에 '안상수체'처럼 '현대카드 서체'로 등록돼 있다.
이후에도 카드 리뉴얼 작업은 계속됐다.
2004년 내놓은 회심작은 업그레이드된 '투명카드'.2003년에 선보인 투명카드에 형형색색의 디자인과 알파벳을 조합한 것이다.
오 대표는 "투명한 신용사회 건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오 대표의 '디자인 혁명'이 빛을 본 데는 정태영 사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주효했다.
디자인을 하기 전 벌이는 토의 과정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내지만 일단 작품이 완성되면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큰 그림을 그려준 뒤 창의성이 반영된 '물건'을 만들어내라는 식이었다.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를 존중했다는 얘기다.
오 대표는 2004년 말 토탈 아이덴티티라는 네덜란드 디자인 회사의 한국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현대카드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그려넣은 '갤러리 카드'로 카드업계를 흔들어놨다.
총 여섯 개의 그림을 선택하기 위해 수만 개의 그림을 봤다고 한다.
최종 후보만 100개였다.
오 대표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카드도 이때 생겼다.
보티첼리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좀 야한 그림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극력 반대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카드는 2006년 만든 보랏빛 퍼플카드와 함께 현대카드의 최고 히트 카드가 됐다.
철저한 시스템에서 나온 디자인 덕분에 현대카드는 2002년 1월 시장점유율 1.8%(신용판매)에서 올해 12.5%로 5년 만에 7배 성장했다.
카드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이 된 오 대표는 요즘 현대캐피탈이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하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