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Business)에 대한 사회의 통념이 바뀌어야 빈곤 퇴치가 가능합니다."

제8회 서울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빈곤퇴치운동가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66)는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시상식 연설에서 이같이 강조한 뒤 시장기능을 통해 사회와 보건,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공헌기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란 관념이 일반적인데,'빈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람으로 여기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공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누스 총재는 "사회복지에 힘쓰는 기업을 위해 공동 설비를 마련하고 이들에 투자될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 주식시장'이나'사회공헌 벤처자금' '사회공헌 평가기관'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라민은행의 금융방식이 담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종의 금융혁신을 이뤄냈다며,기업들도 사회공헌기업 같은 새로운 대안을 통해 또 다른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사회사업과 관련한 많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사회사업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매체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누스 총재는 이날 연설에서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잘못된 경제·사회적 제도에 의해 생겨나고 고착된 것이라며 걸인도 기업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걸인들에게 미화 10달러씩을 대출해 주고 구걸할 때 약간의 상품을 팔아보도록 권유했더니 구걸보다는 물건 판매에 집중하는 기업가 모습으로 변해가더라"며 작은 금융 지원이 인간의 가난 극복 능력을 키워주는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서울평화상 수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이 빈곤 퇴치에 효과가 있음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며 "이 상은 내게 영예로운 훈장"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유누스 총재가 1976년 빈곤층을 위해 창안한 무담보 소액대출제도다.

그라민은행을 통해 제공되는 마이크로 크레딧은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전 세계 빈민들이 빈곤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

유누스 총재는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3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지난 18일 부인 아프로지 유누스 여사,딸 디나와 함께 한국을 찾은 유누스 총재는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는 경제원리를 뛰어넘어 사람에 대한 신뢰를 공유하는 발상의 전환"이라며 "정부도 재원 조성에 기여하고 그 운영은 사회적 기업 등 민간단체에서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누스 총재는 이에 대해 "벤처 캐피털이나 펀드를 조성해 재원으로 활용하고 휴면예금 반환 요구 시 돌려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누스 총재는 20일 이화여대에서 강연하고 21일 출국한다.

그는 또 방한에 맞춰 한국어판 자서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세상사람들의 책)를 내놓았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