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를 졸업한 과학자 여러분,외국 연구·개발(R&D)센터라는 곳에 절대 오지 마세요. 이곳 외국 연구원들은 한국에 와서 정부 돈으로 매달 바다로 산으로 워크숍 가고 최고급 호텔에서 클럽 만들어 잘 놉니다. 말만 개발인력일 뿐 실상은 기술영업 사원들입니다. 도무지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회사들이 (정부과제) 참여 기관이라고 이름 올려놓고 정부 돈 타갑니다." 지난 3월 말 한 정보기술(IT) 관련 외국기업 R&D센터에 근무한다는 한 한국인 연구원이 인터넷 과학기술사이트 '사이엔지'에 올린 글 내용의 일부다. 이 글은 당시 수많은 과학자들의 댓글이 달리며 한동안 화제가 됐다.


○'외국인' 없는 해외 R&D센터

참여정부가 한국을 동북아 R&D 허브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외국 기업의 국내 R&D센터에 대해 이처럼 '실효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제 기능을 거의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기업연구소는 지난해 말(지분 50% 이상) 기준으로 500개를 넘어섰다. 바텔 프라운호퍼 인텔 쓰리엠 노키아 모토로라 페어차일드코리아 등이 들어와 있으며 올 들어서도 구글과 킴벌리클락이 설치하는 등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질적인 면에선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국내에 진출한 외국 R&D센터에서 박사급의 외국인 연구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산업기술 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외국기업 R&D센터의 외국인 연구원 비중은 0.5%(총 연구원 6939명 중 36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박사급 연구원은 전부 6명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화학 관련 회사의 국내 연구소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32)은 "현재 연구소 직원은 10명도 채 안 되며 그나마 박사급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 현장에서 애로 사항이 생기면 본사에 연락하고 해결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과의 공동 연구는 상상도 못 하고 있고 오히려 한국의 경쟁 기업에서 어떤 기술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국내기업과의 공동연구 꿈도 못 꿔

외국 R&D센터 유치의 주목적인 국내 기업과의 공동연구 실적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사(2004년 기준)에 따르면 외국 기업 R&D센터 중 86.1%가 국내 기업이나 연구소와의 공동 연구 실적이 전무했다. 85.2%는 국내에 기술을 이전한 실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에 있는 외국계 IT분야 연구소의 B연구원은 "국내 한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인적 교류나 공동으로 하는 연구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본사에서 첨단 고가 장비를 국내에 팔도록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우창화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기술평가본부장은 "외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은 먼 얘기"라며 "단지 생산 현장에서 기술적인 애로 사항을 해결하거나 세금 감면 및 예산 지원 등 정부에서 외국연구소에 주는 각종 혜택을 받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제부터라도 국내에 R&D를 확대하고자 하는 기업과 단지 제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들어오는 기업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