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계약이 웬말" vs "연예인에만 불리"
"상호간 신뢰와 투명한 운영이 해결책"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이 일부 연예기획사의 전속 계약 조항이 연예인에게 불리하다는 의견을 잇따라 내놓음에 따라 연예계 '불공정 계약'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1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음반기획 제작자와 가수 간 전속계약서 표준계약서가 가수에 불리하다며 음반기획제작사인 C사에게 전속계약서 2개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하도록 시정 권고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유철환 부장판사)는 CF모델 유민호(22)씨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효력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10년 이상 원고의 연예 활동에 관한 모든 권리를 피고에게 귀속시키고 계약 위반시 투자금의 5배, 예상 이익금의 3배를 물도록 한 조항은 쌍방의 권리ㆍ의무에 지나친 불균형이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해 5월 이면계약 등의 문제를 들어 소속사와 갈등을 빚은 개그맨들, 99년 전속계약이 부당하다며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한스밴드 등 '불공정 계약' 논란은 이미 오래 전 시작돼 잊힐 만하면 한번씩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노예 계약이라니!"
연예기획사는 '불공정 계약'을 일컫는 '노예 계약'이라는 표현에부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들은 일부 연예기획사가 무리한 조항을 넣는 경우가 있지만 이를 일반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A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연예인과 신뢰가 깨질 경우 연예기획사 상당수가 계약 조항과 관계 없이 투자에 들어간 기본 비용만 받고 떠나 보낸다"며 "계약이 깨질 때마다 분쟁이 이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 금액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예인이 돌아서면 그 순간부터 그와 관련한 회사 매출은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위약금 조항을 안 둘 수는 없지만 이 조항이 연예인을 노예처럼 묶어두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항변했다.

또 "연예기획도 분명 비즈니스이고 특히 신인을 발굴해 양성하는 경우 연예인과 소속사는 사업 동반자 관계나 마찬가지인데 1, 2년 후 인기가 올라갔다고 동반자가 떠나버리면 이 비즈니스가 과연 수익을 낼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실제로도 법원이 이들의 주장을 인정해 연예인들이 소속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소속사의 손을 들어준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떻게든 연예인에 불리한 구조"
이에 반해 연예인들은 "현재의 관행은 어떻게든 소속 연예인에게 불리한 구조"라며 반박한다.

가수의 경우 통상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에서 보급한 '표준계약서'에 따라 전속계약을 맺는데 소속사들의 입장이 다분히 반영된 이 계약서가 '표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여성 가수 B씨는 "소속사가 도산하지 않는 한 소속사한테서 어떤 대우를 받든 해지하기가 힘든 계약을 어떻게 '표준계약'이라 칭할 수 있느냐"며 "연예인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표준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또 "당장 대중에 노출되느냐 마느냐 절실한 신인의 처지에서는 불리한 계약 조항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연예기획사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연예인에게만 불리한 조항을 내세워왔다"고 비판했다.

◇"무리한 계약조항보다는 상호 신뢰 필요"
연예인과 연예기획사 양측의 논쟁은 결국 상호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연예기획사는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예인이 돌아설까 두렵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만한 '보험'이 필요하고, 연예인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계약 조건 하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동연 씨는 "연예기획사들은 터무니없는 계약 조항으로 연예인을 잡아두려 하기보다는 연예인과의 신뢰를 구축해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긍정적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씨는 "연예인에게는 수입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안정감을 가지고 장기간 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소속사가 홍보비, 교통비 등 잡다한 비용 지출까지 투명히 공개해 믿음을 준다면 연예인이 돈만을 좇아 소속사를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신기원 기자 lalal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