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S그룹에서 주요 계열사의 사장을 두루 거친 A씨(63). 한동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그가 최근 중견 N그룹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역시 S그룹 계열사의 부사장을 지낸 B씨(54)도 코스닥기업 D사의 사장으로 전격 임용돼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새 자리를 찾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다.

헤드헌팅 업계에 최고경영자(CEO)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얼굴'격인 CEO만큼은 가급적 내부 승진을 통해 선임했다. 하지만 요즘엔 달라졌다. 외부에서 영입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고,그 매개역할을 헤드헌팅업체가 맡고 있다.

이유가 뭘까. 업계에선 이를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급증하고 CEO 공모제를 채택하는 공기업이 많아진 탓으로 분석한다. 한마디로 CEO 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여기에 "개방형 고위공무원제 도입 등 정부 고위직의 개방도 CEO급 인재수요의 확대로 볼 수 있다.(EM컨설팅의 황은미 대표)" 물론 기업 수준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중견기업이 대기업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CEO를 영입하려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도 큰 요인이다.

헤드헌팅업체들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컨설턴트를 보유한 커리어케어는 최근 아예 CEO 추천만을 전담하는 'CEO 센터'를 별도 설립했다. 국내외 주요 기업을 상대로 CEO와 이사회 구성원(Board Members)을 발굴해 추천할 계획이다. 현재 10만여명에 달하는 자체 인재 데이터베이스(DB)로부터 CEO급 인재를 분리해 관리할 방침이다. 신현만 대표는 "CEO를 추천해 달라는 의뢰가 작년에 비해 거의 100% 가까이 증가했다"며 "과거에는 과장,대리 등 중간관리자급에 대한 의뢰가 대부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달라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CEO인재 DB에 포함될까.

CEO 추천 전문인 유앤파트너즈의 유순신 대표는 "우선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며 "그중에서도 구조조정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이 선호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전·현직 CEO 출신 뿐만 아니라 부장급에서도 능력만 있으면 CEO로 발탁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CEO 헤드헌팅 서비스는 해외에선 이미 '정통 헤드헌팅'이라고 할 만큼 보편화돼 있다. 세계 1위 헤드헌팅 업체인 콘 페리 인터내셔널(www.kornferry.com)은 'CEO 및 이사회 추천 서비스(Board & CEO Services)'만 30년 이상 운영하면서 명성을 쌓았을 정도다. 커리어케어 신 대표는 "추천한 사람의 연봉 일정 비율만큼을 수수료로 받기 때문에 헤드헌팅업체로선 상대적으로 고연봉인 CEO 비즈니스가 수익성도 훨씬 좋다"며 "앞으로 이 시장이 크게 뜰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