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하진홍 사장은 추석연휴 뒤 첫 출근한 지난 9일 기분좋은 보고를 받았다. '참이슬 후레쉬'가 출고된 지 37일째인 지난 2일 현재 160만상자가 팔렸다는 내용이었다. 두산의 '처음처럼'이 출시 이후 100만상자가 출고되기까지 51일 걸렸던 것에 비해 기간이나 양에서 앞선 것. '낭보'가 아닐 수 없다.

경쟁사인 두산에는 미묘한 파장을 남겼다. "알코올 도수가 소비자의 선택을 쥐락펴락하는 것인가"라는 화두가 재차 던져졌기 때문이다.

두산은 지난 2월 알칼리 소주를 표방하며 당시 국내 소주 가운데 알코올 도수가 가장 낮은 20도짜리 '처음처럼'을 내놓아 출시 당시 5.2%였던 시장 점유율을 9월 말 현재 10.1%까지 끌어올리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런 참에 '참이슬 후레쉬'의 역공이 만만치 않음이 확인된 것이다.

'참이슬 후레쉬'는 진로가 국내 소주업체 가운데 처음 20도의 벽을 깨고 내놓은 19.8도짜리다. 아직은 판매 초기지만 일단 '승부수'가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 대중 술인 소주는 '낮은 데로 임할수록' 시장이 박수를 보내는 걸까.

그렇다면 소주 메이커들은 지금 판매하는 것보다 더 낮은 도수의 소주를 추가로 내놓을 것인가. 지방 소주회사들이 저도주(低度酒) 경쟁에 동참할지도 관심거리다.

몇도까지 내릴 수 있나

진로 하 사장은 "저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소비자의 주문"이라며 "소비자 반응을 봐서 발빠르게 신제품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진로는 이미 15,17도짜리 시제품까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이들 제품을 출시하는 데는 조심스러워 한다. 1992년 보해가 15도짜리 '보해라이트'를 내놓았으나 실패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진로 이수용 연구소장은 "18도를 희석식 소주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보면 된다"며 "그렇지만 희석식 소주에 증류식 소주를 섞으면 소주 특유의 향을 유지하면서 더 낮은 도수의 소주를 만들 수는 있다"고 말했다.

진로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산 주류BG의 한기선 사장은 "(알코올 도수 20도의) '처음처럼'보다 더 낮은 신제품은 내놓지 않을 방침"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처음처럼'의 마케팅에 전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 사장은 "저도주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 문제"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대선주조 금복주 등 지방 소주회사들도 20도 미만의 저도주 개발을 진행 중이다.

금복주 한동언 이사는 "수도권시장의 움직임을 봐서 저도주를 출시할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 음주자가 저도주 시장을 키운다?

소비자들이 낮은 도수의 술을 원하는 건 분명하다. 특히 깨끗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여성과 신세대의 취향이 그렇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참살이(웰빙) 트렌드도 보태졌다.

저도주가 사랑받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중국의 대표적 고도주의 하나인 '마오타이주'는 53도에서 38도까지,'이과두주'도 60도에서 46도까지 다양한 도수의 제품을 내놓아 젊은층을 겨냥하고 있다. 소주를 즐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다카라 주조는 기존 소주 'ZIPANG'을 리뉴얼해 올 봄 25도와 20도의 'JAPAN'을 출시,약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소주를 기본으로 한 7%도짜리 저알콜음료 '다카라 소주 하이볼'까지 내놓았다. 소주업체들은 저도주 개발로 소주의 품종이 다양화되면서 여러 계층의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남궁 덕 기자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