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B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게 되면 A는 B기업의 주주가 되는데,이 때 주주 A가 B기업의 경영에 참여해 경영활동을 하면 A는 소위 오너경영자라 불리게 된다. 특히 A가 B기업을 설립한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창업자 혹은 설립자라는 타이틀까지 붙게 된다. B기업의 사업이 번창하게 되면 B회사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B주식의 가치는 오르게 된다. 이 때 돈을 번 B기업에 항상 나타나는 문제는 이 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것이다.

이에는 대략 네 가지 방향이 있다. 먼저 미래를 도모하며 일단 회사 내에 유보를 하는 방법. 다음으로 주주들에게 많은 배당을 주는 방법. 그리고 기존 사업의 규모를 확장해 더 큰 돈을 버는 방법.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이 때 B기업이 네 번째 전략을 택할 경우 이를 실행하는 방법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B기업 내에 새로운 전담사업부서를 설치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이를 B기업 밖으로 빼내서 새로운 사업을 담당할 C기업을 설립하거나 혹은 인수하는 방법이다. C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할 때 대부분의 경우 B기업의 자금이 동원되어 C기업의 지분을 취득한다. 이제 B기업은 모회사가 되고 C는 자회사가 된다. 만일 C가 다시 D기업(손자회사) 지분을 취득하고 D가 E(증손자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면 이 모든 기업을 지배주주가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어떤 이유로 타기업이 소유한 B회사(모회사) 주식이 매물화 되었고 마침 증손자회사인 E가 자금여유가 있어서 모회사 B의 주식을 일부 취득하게 되었다고 하자. 이제 소유구조는 B→C→D→E→B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B에서 시작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오는 순환출자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중앙일보사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이 삼성과의 계열분리를 위해 매물화되었을 때 이를 매입한 회사가 삼성캐피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삼성캐피탈과 삼성카드가 합병되면서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이 25%를 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환상형(고리형) 순환출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유구조가 주목받은 것은 바로 번호 ②와④로 표시된 부분 때문이었다. 금융회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각각 비금융회사인 삼성전자와 에버랜드의 지분을 5% 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소위 '금산법(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위반이냐는 논쟁이 한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개정안은 아직도 통과되지 않았다) 그런데 금산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은 이 출자구조는 이제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직접 금지조치가 도입될 경우 다시 제재를 받게 된다. 동일한 출자구조에 대해 '금산법'은 금산분리원칙에 위배라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공정거래법'은 환상형 순환출자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만일 정부가 검토하는 대로 B→C→D→E→B식으로 연결되는 순환출자를 직접 해소하도록 하는 방안이 통과되면 해당 기업은 고리를 한 개 끊어야 한다. 예를 들어 E가 소유한 B의 지분을 이 출자고리에 속하지 않은 G에게 넘겨야 한다. 그렇지만 G기업이 기존 계열사 중 하나라고 하면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구조가 B→C→D→E→G가 될 뿐이다. 최근 대기업끼리는 공동으로 설립한 제3의 회사,예를 들어 사모투자펀드인 F회사를 설립해 여기에 지분을 넘김으로써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 경우 지분구조가 B→C→D→E→F로 연결될 뿐 역시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비용은 상당히 든다. G 혹은 F가 E의 지분매입시 필요한 자금이 만만치 않다. 이는 또한 기존에 보유하던 주식을 새로 도입한 법규정에 의해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므로 소급입법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강제매각의 부작용을 완화시키고 소급입법 논란을 줄이기 위해 순환출자라도 지분을 일정수준까지(예를 들어 10%) 인정해주고 그 이상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매년 줄여나가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순환출자구조 등을 통해 의결권이 증폭되는 소액지분지배주주 문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소유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없다. 거래 자체의 불법성이나 공정거래 여부는 중요하게 취급하지만 소유구조 자체를 가지고 이를 해소하라는 식의 규제를 시행하는 경우는 없다. 이는 기업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기 때문이다. 소유지배구조의 우수성은 경영성과와 연관돼 있다. 아무리 간단명료한 구조라 해도 성과가 나쁘면 문제가 있는 것이고 거꾸로 구조가 복잡해도 성과가 좋으면 좋은 지배구조라고 칭찬받을 수 있다. 소유지배구조는 정답이 없다. 기업의 성과에 의해 판단돼야 하기 때문이다.

스승이 달을 가리키자 제자들이 달은 안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았다는 얘기가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