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

알바니아 이민 2세로 미국 인디애나주 휘팅에서 태어난 뮤라드 교수는 밤잠을 자지 않고 겹치기 일을 하며 학위과정을 마친 대표적 자수성가형 과학자.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하는 식당에서 설거지나 식사 주문,카운터 일을 봤다.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웨스턴 리저브대학을 졸업했다. 임상의학 과정을 밟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연구하는 과학자의 길도 걸었다. 33세에 버지니아주립대 조교수로 임용됐으며 45세가 된 1981년 스탠퍼드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 후 애보트사 부회장 겸 연구소장으로 기업에서의 경험을 했으며 직접 생명공학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97년 텍사스 휴스턴대학으로 돌아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세포들 사이의 의사소통 방법을 연구하던 중 산화질소의 신호전달 역할을 밝혀 노벨상을 받았다. 이 연구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개발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 머리 겔만 교수

20세기 물리학을 이끈 리처드 파인만 박사가 "현대 물리학의 유용한 지식 가운데 겔만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할 만큼 파인만과 함께 물리학 혁명을 주도한 천재 과학자다. 20세기 물리의 중심에 놓인 소립자 세계를 완벽하게 정리했으며 초끈이론이나 표준이론 등 핵심이론의 해석과 모델 정립에 깊이 관여했다. 노벨상은 최소 미립자인 쿼크를 발견해 40세가 된 1969년에 탔다.

9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한국어에도 조예가 깊고 역사학과 언어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높아 '걸어 다니는 사전'으로도 통한다. 192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복잡한 곱셈을 할 수 있었으며 14세에 고등학교를 마쳤다. 21세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5세에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가 됐다.


▶ 페리드 뮤라드 교수

3년간 미국 MIT에서 포스트닥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곤 줄곧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나라가 자랑하는 국보급 과학자.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7년 역사의 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났으며 테크니온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교에서 교수를 하면서 단백질과 관련된 생화학분야를 연구했다. 세포 내 단백질의 사멸과 관련된 유비퀴틴 효소를 찾아낸 공로로 1998년 동료 교수인 아브람 헤르슈코 박사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공과대학인 테크니온 공대에 생물학 및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해 대학의 분위기를 바꾸며 이스라엘의 연구풍토도 바꾼 학자로도 유명하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