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에 와서 상품을 못 찾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지하 1층에서 5층까지 연면적 3000평의 매장에 무려 5만여종의 상품이 가득 들어차 있는 이마트 명일점.이렇게 종류가 많다 보면 쇼핑 고객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직원들도 무슨 상품이 어디 있는지 적잖이 발품을 팔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보안업체 '수호시스템' 소속으로 이 점포 경비를 맡고 있는 윤미정 주임(22)은 매장 구석구석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다.

"처음 매장에 배치받고 1주일 동안은 매장 전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상품 위치부터 메모해 외웁니다. 도난을 막는 것이 보안요원의 기본 임무이다 보니 어떤 상품이 어디 있는지 몰라선 안 되지요. 마트에 자주 오시는 몇몇 분은 이제 상품 위치에 관한 한 입구에 있는 저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는 걸 아시더라고요."

윤 주임은 원래 영화 '보디가드'에서처럼 가슴에 권총을 품은 채 긴박한 상황이 닥치면 멋지게 VIP를 보호하는 경호원을 꿈꿨다.

그래서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보안업체에 지원했다.

단정한 옷차림에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일하는 '요원'들의 모습을 동경한 나머지 택한 길이었지만,대형 마트에 배치되고 보니 실제는 꿈과 한참 멀었단다.

일단 무술 교육보다는 친절교육을 더 많이 받아야 했다.

"항상 웃어야지요. 경비가 주 업무지만 그렇다고 딱딱한 얼굴로 서 있으면 쇼핑하러 온 고객들이 좋겠어요? 매장 입구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나 같은 보안요원이니까 대형 마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이마트에서 일한 지 3년 만에 친절교육 강사로 뽑힐 만큼 미소가 얼굴에 뱄다.

가끔씩 상품을 '슬쩍'하려는 고객을 처리하는 것도 윤 주임의 임무다.

하지만 도둑이라고 무작정 붙잡을 수 없다.

다른 고객들의 쇼핑에 불편을 줘선 안 되기 때문이다.

윤 주임은 주머니에 물건을 넣거나 하는 행동수상자를 발견하면 일단 계산대까지 조용히 뒤따라간다.

계산을 하지 않고 통과하는 것이 확인될 때 비로소 나타난다.

"고객님 아직 계산하지 않은 품목이 있는지 확인 바랍니다. 계산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조차도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 얼굴이 금세 홍당무가 돼 계산대로 갑니다. 아니라고 끝까지 부인하는 고객은 근처 파출소로 조용히 '모셔다' 드리고요."

자주는 아니지만 폭력을 쓰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도 있는데,이럴 땐 유도를 비롯해 복싱 등 그간 닦아온 무술기량을 동원해 가볍게 제압한다.

여성으로서 대형 마트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데 힘든 것은 없었을까.

"가끔 술취한 남성분이 추근대는 경우가 있지요. 하지만 그런 분들도 일단은 '고객'이니까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펀치를 한 방 날려주고 싶지만 참아야지요."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