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올랐기에 '혁명'인가.
100년간(1520∼1620년) 스페인 영국의 곡물가격이 약 3.5배 올랐다.
(연평균 상승률 1.3%) 우리나라 소비자물가가 40년간(1965∼2005년) 28.5배 상승(연율 8.7%)한 것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획기적이었다.
처음 겪은 인플레이션이니 만큼 그 파급효과가 매우 컸다.
물가변동의 역사를 따져 보자.
요즘엔 지속적 물가상승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전까지 물가추이는 완만한 하락세였다.
지속적 상승은 장기호황기에 있었다.
장기파동을 보면,호황국면에 상공업이 번성하는 동시에 인구증가,도시화,물가상승도 발생한다.
13세기 16세기 18세기가 그러한 상승국면이다.
19세기와 20세기 후반도 상승국면이지만 19세기에는 예외적으로 물가가 하락했다.
경제전반에 걸친 기술진보와 생산성 향상 덕분에 생산비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요즘 컴퓨터 등 정보통신상품의 가격하락을 생각하면 이해될 것이다.
반대로 경제가 좋지 않을 때 인구정체,인구이동감소,상공업 침체와 함께 물가도 하락한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기의 급격한 물가하락이 대표적 예다.
20세기 후반의 비교적 높은 물가상승률은 원자재가격 상승 등 이례적 요인도 있다.
그러나 여러 제도변화에 따라 금융시장,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졌고 물가의 하방경직성이 높아진 때문이다.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형성이 복잡해진 영향도 있다.
초인플레이션도 있다.
매달 상승률이 50%씩 적어도 1년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하는 초인플레이션의 몇몇 예로서,로마의 디오클레티안 황제 때 통화남발과 그로 인한 화폐가치 급락,프랑스대혁명 당시 몰수한 교회재산을 담보로 한 무분별한 통화발행으로 '아시냐'가 휴지조각 된 일,1923년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의 초인플레이션,1970년대 남미,1980년대 일부 구동구권의 경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는 극심해진 재정적자 또는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통화가 팽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럴 때는 결국 화폐경제 전반이 교란된다.
체제변화 제도개혁을 통해 경제가 정상으로 복구된 후에도 통화신인도에 대한 불안이 오래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단기에 통화가치가 붕괴됨에 따라 채권채무관계가 소멸되어 버린다.
1923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채권자 손실이 엄청난 반면,금융채무가 탕감된 기업은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투자,생산,고용 및 소득증대에 기여할 기회를 얻었다.
장기적인 물가변동도,초인플레이션 때의 수준만큼은 아니지만,채권자 채무자간 부와 소득 재분배를 수반하며 화폐경제 불안요인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상대가격 변화가 동반되면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그런 일을 풍자한 대표적 예다.
16세기 가격혁명의 경우 경기상승국면에 금,은 유입이 가세해 물가가 올랐다.
스페인에 들어온 귀금속은 유럽 각국으로,중국으로 이전되어 파급효과가 전 세계에 미쳤다.
인구증가도 물가상승의 원인이 된다.
인구압력이 생길 때 상대적으로 곡물공급을 부족하게 해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물가가 올랐다.
아직까지 논란 중인 가격혁명의 결과로서,임금상승이 물가상승보다 뒤져 실질임금이 하락했고 그래서 이윤몫이 커져 자본축적이 이루어졌으며 이로써 자본제적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가설이 있다.
16세기 스페인에서는 물가와 임금이 동반상승하는데 생산적 투자는 없어 기업활동이 위축되었다.
서비스 부문만 과잉팽창하면서 경제가 쇠퇴했다.
반면 17세기 영국은 도시 목수의 임금과 곡물가격을 비교한 자료에서도 나타났듯,실질임금이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아마도 농공교역조건 차이가 반영된 때문이겠으나 그 시기에 자본축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주나 자영농의 이득을 뜻한다.
이는 그 무렵 관습적 소작권,공동지 이용권을 폐지하고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하려는 인클로저운동이 팽배한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16세기 가격혁명은 이처럼 영국에서는 지주,대규모 차지농,자영농의 번영,농업노동자층 창출 등 17∼18세기 영국 농업자본주의의 발달과정과 연결된다.
물가란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은 종종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회주의 국가나 또는 전시경제에서는 물가통제를 시도한다.
이는 종종 상대가격통제를 수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도 분배와 화폐경제의 신뢰도를 위해 물가안정이 중요하다.
어느 경우든 경기국면을 감안한 공급 측의 조절,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이 바람직하다.
실물시장경제의 상태를 무시한 무리한 물가억제,특히 상대가격통제는 부작용만 낳는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