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소형 에어컨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킨 ㈜파람의 정창교 사장(49).

그는 물을 이용한 수냉식으로 실외기가 필요 없는 에어컨,

원하는 장소로 아무때나 간편하게 옮길 수 있는 이동식 에어컨 등

신개념 에어컨을 잇따라 개발,여름시장의 블루오션을 개척했다는 업계의 평을 받는다.


정 사장은 개발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워터콘(watercon)'이란 브랜드로 혁신적인 수냉식 에어컨을 선보였다. 수냉식 에어컨은 일반적으로 건물 밖이나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하는 실외기가 필요없다. 그 대신 작은 호스를 이용해 수도꼭지의 수돗물을 에어컨 본체에 흐르게 해 냉각시킨다. 물을 돌리기 때문에 기존의 공냉식에 비해 소음이 훨씬 적고 냉방효율은 20∼30% 정도 높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e-파람'이란 브랜드로 출시한 이동식 에어컨은 공냉식이지만 실외기를 책가방 크기(3㎏)로 초경량화해서 이곳저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신제품이다. '에어컨은 움직이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것.

이동식 에어컨은 설치기사의 도움 없이 소비자가 냉방하고 싶은 곳에 어디든 옮겨놓은 다음 가벼운 실외기를 건물 밖으로 매달아놓으면 설치가 끝난다.

정 사장은 이동형을 출시하면서 중국산 제품들과 차별화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동식 에어컨은 중국산이 많은데 소음이 많고 냉방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우리 제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에어컨 제조는 설비와 자재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전국적인 영업조직과 유통망을 확보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엄두를 못내는 아이템이다.

"에어컨 사업을 한다고 할 때 주위에선 중소기업이 손을 대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며 하나같이 만류했지만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 싶어 모험을 걸었지요."

그는 실외기를 설치하기 힘든 작은 사무실 등 틈새시장이 의외로 크다고 보고 설치하기 편하고 이동하기 편리한 소형 에어컨을 개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 대형 에어컨은 전체 공간을 불필요 하게 넓게 냉방하기 때문에 전력소모가 많은 등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는 데 착안했지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수냉식 에어컨은 컴퓨터,첨단기기 등 열 발생이 많고 폐쇄공간이어서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기 힘든 전산실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정 사장에게 에어컨은 두 번째 사업이다. 1989년 사업을 시작한 그는 전자부품인 컨넥터(입출력 단자) 제조업을 하다가 2002년부터 에어컨 개발에 나섰다.

"당시 야간 경영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한 교수님으로부터 소형 에어컨을 개발하려다가 자금난으로 창업 2년 만에 좌초 위기에 놓인 업체가 투자자를 물색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 회사를 아예 인수했지요."

정 사장은 전자부품을 대기업에 납품하면서 늘 완제품 회사를 하고 싶었던 터라 서슴없이 제2의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에어컨 사업은 예상 외로 힘들었다. 인수 1년 만에 수냉식 에어컨 개발을 완료하고 상품화에 성공했지만 자동화 설비는 물론 자재와 물류시설 등을 갖추느라 많은 자금이 투입됐다. 중소기업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시설 투자비로 들어간 자금만 약 40억원에 달한다.

2004년 수냉식 에어컨 양산체제를 갖췄지만 영업과 판로가 막막했다.

"유통업계는 중소기업의 첫 개발품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다 대 메이커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지면서 출시 1년 만에 겨우 유통업체들과 거래를 성사시켰다. 차츰 유명세를 타면서 이젠 에어컨 시장의 다크호스로 꼽힌다.

이 회사는 올해 여름에 수냉식 2000대,이동형 3000여대 등 5000대를 생산했다. 내년에는 1만여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올해 에어컨 매출은 20억여원을 예상하지만 내년에는 40억여원으로 잡고 있다.

오는 11월께 냉난방 겸용 기기의 개발을 완료한다. 이 제품은 터키 등 지중해 연안 국가,파나마 칠레 등 남미국가와 같이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곳을 중심으로 수출에 집중할 계획이다.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난 정 사장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서울의 한 전자부품 생산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5년간 근무하다가 1989년 전셋집을 줄여 마련한 1000만원으로 창업했다.

이제 용인의 5000여평 공장에서 9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사업체로 커졌다.

정 사장의 절친한 친구인 양재길 대림산업 북부사업소장은 "정 사장은 기존의 전자부품사업으로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데도 중소기업으로선 힘들다는 에어컨사업에 굳이 도전할 정도로 개척정신이 강하다"며 "창의력이 많아 공장설비도 손수 설계해서 자동화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용인=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