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은 단지 기업의 덩치를 키우겠다는 목적만이 아니다.

탐나는 인재를 얻기 위해 그가 몸담은 회사를 인수해버리기도 한다. 미국 시스코사가 실제로 그랬다.

어떤 기술이 자사에 위협적이다 싶으면 통째로 그 기업을 인수해 기술 자체를 사장(死藏)시켜 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등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굳힌 기업들이 곧잘 활용하는 전략의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판국에 기술획득을 주목적으로 한 M&A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쌍용자동차 파업배경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들이 들린다.

그 중에는 기술유출 의혹도 있다. 일각에선 중국 상하이차가 처음부터 투자할 생각은 없이 기술을 빼먹기 위해 쌍용차를 인수했으며, 따라서 그 목적이 달성되면 재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 중국이 인수한 LCD분야의 비오이하이디스도 비슷한 의혹에 휘말리면서 중국의 한국기업 인수 의도가 다시한번 주목받고 있다.

쌍용차, 비오이하이디스 등이 좋지 않은 선례로 남게 되면 그 여파가 작지않을 지 모른다.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것은 뻔한 일이고, 이는 제대로 매각을 한 것이냐는 비판 분위기와 맞물려 한·중 양국기업 모두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냉정히 생각해볼 것이 있다. 우리가 기술을 노리고 선진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문제 없고 중국이 그러면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리고 중국이 해외기업 M&A를 통해 기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우리가 몰랐던 것도 아니다. 지금 불법이냐 합법이냐, 기술유출이냐 기술이전이냐, 온갖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기술의 속성상 그런 경계를 정확히 구분해내기 어렵다. 결국 인수가 된 이상 기술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핵심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이다. 쌍용차나 비오이하이디스 모두 인수 당시에도 기술유출 우려가 제기됐지만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따른 계산을 제대로 했느냐일 것이다. 어떤 기술이 꼭 우리가 아니어도 어차피 중국에 이전되고 말 그런 것이라면 제값을 받고 넘기는 게 유리할 것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술유출만 따지다간 오히려 기회를 놓치는 꼴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만 가진 기술,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국내 관련산업이 큰 피해를 볼 기술의 경우에는 정부의 산업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어떤 기술이 여기에 해당되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우선 쉽지 않다. 정부예산이 들어간 기술이면 그 기술을 활용한 투자나 제조는 한국 땅에서만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완전한 민간기술이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다. 잘못하면 엉뚱한 규제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쌍용차 비오이하이디스 사례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 한가지는 확실하다. 중국이 인수하려 했을 때 최소한 기술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몰랐던 바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생산기술, 지식재산권, 핵심인력 등의 가치를 제대로 따져봤어야 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