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의 거물급 투자은행가 두 명이 일선에 복귀하게 돼 관심을 끌고 있다.

1990년대 말 아마존닷컴과 넷스케이프 등 인터넷 업체의 기업공개(IPO)를 맡으며 한 해 연봉이 1억2000만달러(약 1150억원)까지 치솟았던 프랭크 콰트론(50)과 1970년대에 뉴욕시를 파산 일보 직전의 위기에서 구한 펠릭스 로하틴(78)이 그 주인공이다.

로이터통신은 23일 월가에 인터넷 주식 붐을 일으켰던 콰트론이 향후 1년간 법규를 준수하는 조건으로 사법방해 혐의 관련 재판을 받지 않기로 검찰과 합의했으며 이에 따라 월가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재판부도 검찰과의 합의를 수용하기로 했다.

전 크레딧스위스그룹 소속 투자은행가였던 콰트론은 2003년 4월 사법조사 방해 혐의로 기소됐었다.

미 검찰은 1990년대 인터넷 기업들의 증시 상장이 한창일 때 투자자들에 대한 주식 배분 등을 둘러싼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콰트론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콰트론이 부하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관련 자료를 깨끗이 파기해야 할 때"라고 촉구하는 등 조사를 방해했다며 그를 기소했다.

콰트론은 2004년 재판에서 18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법원이 형 집행을 정지시켰고 올해 3월 재개된 재판에서 문제점을 언급하며 판결을 뒤집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추가 재판을 준비해 왔으나 콰트론이 끝까지 자신의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서 결국 양측이 합의에 이르게 됐다.

한때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투자은행가로 꼽히기도 했던 그는 검찰과 합의 이후 "내 본연의 일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계의 전설로 불리던 펠릭스 로하틴은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에 영입됐다.

리먼브러더스는 22일 로하틴을 선임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로하틴은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펄드 최고경영자(CEO)의 자문역과 함께 회사 산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장직도 겸하기로 했다.

그는 "리먼브러더스는 내가 월가에 첫 발을 디뎠을 때부터 알던 회사"라며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로하틴은 1970년대 말 뉴욕시가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했을 때 뉴욕주 시정지원회의 회장 자격으로 채권단과의 협상을 총괄하면서 뉴욕시의 파산을 막아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1997년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되면서 잠시 투자은행계를 떠났다가 2000년 대사직을 그만둔 뒤 대규모 합병에 관해 자문을 해주는 회사를 차렸다.

로하틴은 1928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나치 치하의 프랑스를 탈출,위조 여권을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