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과 고실업으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 소리를 듣던 독일을 회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역풍을 만났다.

메르켈이 작년 11월부터 추진해온 친시장 개혁조치에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민당) 내 좌파 세력이 지나치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94년 이후 처음으로 22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베를린에서 열리는 기민당의 정강 정책 수정 논의에서 경제정책방향을 둘러싼 당내 이념 갈등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념 논쟁의 발단은 집권 기민당의 지지율이 31%,메르켈의 지지도는 37%로 각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촉발됐다.

기민당 내 좌파 세력은 메르켈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율 인하,노조의 경영참여 축소 등 친시장적 개혁조치가 반(反)물질주의에 기반을 둔 기민당의 전통을 훼손시켜 인기가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민당의 네 명의 부총재 가운데 한 명인 위르겐 뤼트거스 북라인-베스트팔리아주 주지사는 "당이 '자본가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며 지도부를 정면 공격했다.

그는 세금을 깎으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메르켈 총리의 친시장 정책을 비판했다.

기민당 내 전통 세력을 상징하는 카를-요제프 라우만 의원도 "지금 상황이라면 (2003년 채택한 복지를 줄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라이프치히 합의와는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라며 라이프치히 합의에 대한 전면 수정을 촉구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같은 반격을 일축,시장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좌파의 불만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다.

좌파가 기대를 걸었던 '사회적 보수주의'에서 '경제 자유주의'로의 문화적 대전환은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정책변화의 효과는 2분기 성장률이 5년 만에 가장 높은 0.9%로 올라서고 6월 실업률이 4년 만의 최저 수준인 8.2%로 떨어진 데서 입증됐다고 메르켈은 믿고 있다.

그는 "나는 여론이 아니라 독일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메르켈은 지난 5월 독일 노조총연맹(DGB) 총회에서도 "독일은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야 하며 더 이상 복지를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말해 총회에 참석한 노조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또 지난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선 "시장이 자유로울 때 경제가 번영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당 안팎의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민당 내 좌파 세력은 물론 대연정 파트너인 정통 좌파 사회민주당(SPD)이 메르켈 총리의 행동 반경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메르켈 총리가 당내 이념갈등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독일 경제의 회생을 이끌어 가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