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현대시학'으로 문단에 나온 이종만 시인(57)이 등단 14년 만에 첫 시집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문학세계)를 펴냈다.

시인은 29세 이후 30여년간 생업으로 벌을 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꽃과 벌 사이에서 나온다.

시인에게 꽃은 치열한 생명이고 벌 또한 자기 생을 한 치도 낭비하지 않는 치열한 생명이다.

꽃과 벌에게서 생명의 신비를 배우는 셈이다.

'꿀 한 되에는/ 지구를 몇 바퀴 돈 길이 만큼/ 길고 긴 벌의 길이 들어 있다/ 길고 긴 비행시간이 담겨 있다/ 한 숟가락 꿀을 머금으면/ 입안 가득 하늘의 향기가 고인다/ 아무리 꽃이 피어도/ 하늘이 내려주지 않으면/ 꿀 한 방울 딸 수 없다/ 꿀은 하늘이다.' ('꿀은 하늘이다-양봉일지8' 전문)

자연속에서 꽃과 벌,나비 등과 벗삼아 지내는 시인에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호칭은 무의미할 뿐이다.

'개망초꽃에게 우리 장미야,하고 불러본다/ 나비가 날아와 앉는다/ 장미꽃에게 개망초,이 개망초야,하고 불러본다/ 나비가 날아와 앉는다.' ('꽃이름' 전문)

개망초꽃과 장미꽃을 구별하는 것,개망초와 장미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다.

개망초와 실제 개망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꿀을 구하는 나비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비에게는 개망초꽃과 장미꽃은 '맛의 차이'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시인은 언어의 감옥,더 정확하게는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결코 호명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통렬히 꾸짖는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