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한국과 중국정부의 반대에도 불구 광복절인 15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들을 위령함에 따라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주변 전쟁 피해국들을 철저히 무시한 고이즈미 총리의 8·15 참배에 대해 우리 정부는 즉각 '깊은 실망과 분노'를,중국 정부는 ‘강력한 분개와 규탄’의 뜻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이후 사실상 중단돼 온 한·일 정상외교는 고이즈미 총리가 퇴임하는 내달 이후 신임 총리의 태도에 따라 복원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 한·일,중·일 관계 악화 불가피

한·중 양국은 가능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일본을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이날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우리 정부와 국민은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경고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날 성명에서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 대외 침략전쟁의 최대 피해국으로서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으로 인해 중국인민이 심중한 재난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처리하는 것이 전후 중·일관계를 회복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초이자 양국이 공동으로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전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참배 후 "의견이 다르고 불쾌한 점이 있다고 해서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라고 반문한 뒤 "(한국과 중국이 내가) 참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한국과 중국을 오히려 비판했다.

◆ 한·일관계 언제나 회복될까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17일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이후 양국 간 정상외교를 중단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내달 퇴임하고 새 총리가 들어서면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5일 비공식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중단된 것은 지난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영향받은 바 크다"며 "그때 취한 조치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뒤집어 보면 '신임 일본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경우 한·일 정상외교가 복원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차기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전임자와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경우 한·일 정상회담은 개최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새 총리가 취임하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인식·정지영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