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튼이 어느날 사과나무 밑에 누웠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황당한 '에피소드'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했을까? 와트가 물이 끓을 때 주전자 뚜껑이 들썩이는 데서 퍼뜩 아이디어가 스쳐 증기기관을 발명했다는 얘기도 거짓이다.

뉴튼에 이르러 완성되는 서유럽의 과학혁명은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각 시대 최고 두뇌의 피나는 연구 결과가 축적된 산물이다.

과학혁명은 결국 근대기술과 경제성장으로 연결된다.

17세기 이전 유럽인의 세계관은 종교적,신학적이었다.

왕권신수설이 정치이론의 기반이었고 결혼,식생활,일상적 시간개념까지도 교회와 종교 교리에 의존했다.

당시 첨단과학인 천문학 분야에서 서유럽은 다른 문명에 비해 앞서 있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마야문명은 천문학적 관찰에 근거를 둔 아주 정확한 달력을 만들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유럽에서 세상을 세속적,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이 싹텄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과학혁명이다.

여러 문명 가운데 유독 서유럽문명에서만 근대과학이 발전했다.

나아가 거대한 정신혁명으로까지 퍼졌다.

과학혁명의 핵심에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전이 있다.

1500년대 초까지도 우주에 대한 유럽의 전통적 사고는 중세 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를 기독교교리와 조화시킨 틀 안에 있었다.

지구가 우주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당시 물리학,지구운동에 관한 사고를 지배했고 기독교 교리와도 잘 맞았다.

그 무렵 과학은 일차적으로 신학의 한 분야로서 종교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교회법과 천문학을 연구하던 폴란드의 성직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포함한 유성이 움직이지 않는 태양 주변을 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정확한 계산을 위해 고대 천문학자 프톨레미오스의 업적에 의존하던 그 시절,코페르니쿠스의 생각에 프톨레미오스규칙은 정확성이 떨어지고 조물주의 권위도 손상시켰다.

그래서 그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연구되던 고대 그리스의 또 다른 생각,즉 지구보다 오히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개념에 몰두하다가 결국 지동설을 완성했다.

이 가설은 그도 예견하지 못했을 만큼 엄청난 과학적 종교적 의미를 지녔으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기본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후 브라헤가 망원경도 없이 육안으로 20년 동안 별을 꼼꼼히 관찰한,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남긴다.

이어 케플러는 브라헤의 자료를 재정비하여 3가지 법칙을 냈다.

특히 그의 세 번째 법칙은 우주의 중력에 관한 개념을 정립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다.

다음 타자는 갈릴레오였다.

그는 가속도,관성의 법칙에 관련된 근대적 실험방법을 구체화했다.

또한 망원경을 이용한 관찰로 지동설이 옳다는 것도 확인한다.

이들 업적은 종교당국의 공격을 받고 종교재판을 겪는 우여곡절 끝에 거의 1세기가 지나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옛 천문학 물리학은 폐기상태가 되면서 이 옛 '과학'과 첨단과학 사이에는 의사소통도 불가능할 만큼 근본적 단절이 생겼다.

케플러법칙으로 수정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을 갈릴레오 물리학과 통합시킨 사람이 뉴튼이다.

그는 이 문제를 운동과 역학을 설명하는 일련의 수학법칙을 써서 해결했다.

뉴튼이 이룩한 종합의 요체가 중력의 법칙(우주의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를 질량과 거리에 기초한 일정한 수학적 관계로 끌어당긴다)이다.

이미 물리학의 기본 지식을 대부분 터득한 그는 18개월간 끼니를 거를 정도로 연구에 집중하여 불후의 명작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다.

이러한 과학혁명은 왜 일어났을까? 장기적으로 13세기 무렵 서유럽에 출현한 중세대학이 과학혁명에 공헌했다.

1300년쯤이면 대학에서 철학이 신학에서 독립한다.

14,15세기에 수학 천문학 물리학이 철학 내의 첨단분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여러 천재적 재능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또한 르네상스기에 재발견된 그리스 수학 덕에 17세기 유럽 수학이 크게 개선되었다.

부유한 메디치가문 등은 갈릴레오 같은 천재들을 후원했다.

유럽 해외 팽창 과정에서 원거리 항해를 위한 과학적 도구,정확한 측정을 가능하게 한 발명(망원경 기압계 온도계 진자시계 등)도 과학혁명을 도왔다.

이로써 세계에 대한 지식 획득 방법이 더 개선되고 베이컨,데카르트의 과학 연구방법도 출현했다.

과학혁명 이후 생긴 국제과학단체,과학전문지가 과학을 서로 전달하고 교류하며 교육받은 과학자단체가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식 확산이 목표인 이들끼리 더욱 경쟁적이 되면서 과학이 진보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출처불명의 만화같은 에피소드와 거짓말에만 점점 솔깃해져 가는지,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진학을 쉽게 한다는 둥,혹세무민하는 교육정책,'관행'이 판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