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수록 금융·외환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미칠 타격이 커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2004년 3월, 2016년 12월 두 차례의 탄핵 때와 달리 이번엔 통상환경 악화에 따른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가 겹친 복합위기에 직면했다는 설명이다. 과거 탄핵 때는 중국과 반도체 특수를 앞세운 우호적 경제 환경이었지만, 지금은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 등 대내외 리스크가 겹겹이 산적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엔 경제 영향 미미”한은은 15일 발표한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에서 “이번과 과거 모두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경제 심리가 약해진 것은 공통적”이라면서도 “이번엔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및 글로벌 경쟁 심화 등 대외 여건에서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한은에 따르면 과거 두 차례 탄핵 당시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단기적으로 키웠지만 경제 전체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은 탄핵안 가결 전후로 변동성이 확대된 뒤 전반적으로 달러화 흐름이 좌우했다. 주가도 투자심리 악화와 함께 떨어졌다가 단기간 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국고채 금리(3년물)도 좁은 범위에서 등락을 거듭했다.다만 탄핵 가결 여파로 민간 소비는 타격을 받았다. 2016년 2분기와 3분기 각각 3.4%, 3.3%였던 민간 소비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4분기에 절반 수준인 1.6%로 추락했다. 재화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지수도 2016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석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하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금융 정책도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실손의료보험 개혁 등 금융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정치적 공백 탓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6일 오전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시장 상황을 점검한다. 당장 가계부채 관리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은 적지 않다고 금융권에서는 보고 있다. 올 3분기 말 가계부채는 처음으로 1900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은행에 구두 지도를 하며 가계부채 증가를 억눌러왔지만 기준금리 인하에 리더십 부재까지 지속되면 당국의 관리가 효력을 잃을 수도 있다.부동산 PF 사업 구조조정도 삐걱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국 혼란 속에 금융회사가 경공매 정리를 지연하는 등 속도감 있는 연착륙을 목표로 하는 금융당국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자영업자를 위한 ‘상생금융’도 차질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은행권에 채무 조정과 자금 지원 등을 주문했지만 흐지부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 정책도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금융위는 비급여·실손 개혁(보건복지부), 스테이블코인 규제(기획재정부) 등을 놓고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강현우 기자
국내 한 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는 지난주 국내 일정을 접고 미국과 아시아 사업장을 긴급 방문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해외 사업 파트너와 정부 관계자들이 쏟아낸 우려에 직접 답하기 위해서다. A씨는 “대통령 탄핵 등 정치 리스크에 따른 혼란으로 해외 원료 조달 등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해외 투자 계획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닌지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며 “내년 상반기에 들어설 정부 성향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뒤바뀔 수 있는 점을 반영해 사업계획을 다시 짜기로 했다”고 말했다. A씨 사례처럼 국내 30대 주요 그룹 중 60%가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했거나 다시 수립할 것으로 조사됐다. 통상 대기업들이 11월 말~12월 초에 다음해 사업계획을 확정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한국경제신문이 15일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30대 주요 그룹(금융회사 제외)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10곳(33.3%)은 2025년을 보름 앞둔 시점인데도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8개 그룹(26.7%)은 탄핵 등 큼지막한 변수가 생긴 점을 감안해 사업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이유(복수 응답)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55.2%)와 ‘탄핵 등 정치 리스크 확산’(44.8%), ‘내수 위축 심화’(31.0%) 등을 들었다.내년 경영 환경에 대해선 90%가 “올해보다 나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중 4개 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네 곳 중 한 곳꼴로 내년 투자 규모와 신규 채용을 올해보다 10% 줄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