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는데 요즘은 소 키우는 재미로 삽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있지요."

전남 순천의 한우사육 농민 장갑식씨(55·승주읍 유흥리)는 부농(富農)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해마다 한우 75마리를 키워 이 중 50여마리를 판다.

연 매출 3억원에 1억여원의 순이익을 올린다.

하지만 장씨는 국내 유명 한우 브랜드인 '지리산 순한 한우' 사업에 참여하기 전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인천의 기계공장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장 등에서 일했던 그는 1986년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왔다가 눌러앉아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소 2마리에서 시작해 47마리까지 늘렸지만 순탄치 않았다.

소를 팔아도 중간 상인들의 농간으로 남는 게 거의 없었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와 2000년 소 구제역 파동 때는 멀쩡하게 키운 소를 2~3년 전에 샀던 송아지값보다 싼 값에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농협의 '지리산 순한 한우' 사업단 출범 소식을 듣고 가입한 뒤 별 걱정 없이 소 키우기에 전념하고 있다.

전남 동부 지역의 소사육 농민들이 '지리산 순한 한우' 브랜드 사업으로 새로운 희망을 열어가고 있다.

전국 최초로 2001년 한우 공동 브랜드를 내세운 이 사업에는 순천·광양,고흥,곡성,구례,보성,여수,장흥 등 7개 조합의 420여 농가(사육 한우 2만5000여마리)가 참여하고 있다.

농협 산하의 이 브랜드 사업단은 지난해 8월 롯데쇼핑과 공급계약을 맺어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백화점 등 전국 70개 매장에 연간 4000마리를 납품하고 있다.

사업단의 월 매출액은 25억원.참여 농민들은 다른 농가보다 소 한마리당 평균 50만원가량을 더 받는다.

'순한 한우'가 다른 한우에 비해 고가에 팔리는 것은 브랜드 사업을 통한 엄격한 품질 관리 덕분.사업단은 인공수정부터 거세,전용사료 공급,도축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매뉴얼로 소를 관리한다.

더구나 고기 맛이 가장 깊고 풍부하다는 생후 30개월 된 690kg 이상의 소만 시장에 내놓아 소비자들이 즐겨찾고 있다.

그러나 브랜드 사업이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시련도 많았다.

유자골한우(고흥),표고한우(장흥),매실한우(광양),녹차한우(보성) 등 지자체별로 자체 브랜드를 소유한 농가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업단은 통합 브랜드를 운영할 경우 △운송비와 가공 물류비를 줄일 수 있고 △양질의 육류를 대량 공급할 수 있어 유통업체와 가격 교섭을 유리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하며 농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박인희 순한한우 브랜드 사업단장은 "농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느라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며 "브랜드에 참여할 농가를 내년까지 600여 농가(소 4만5000마리 규모)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천=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