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가 13일 공청회에서 공개한 생보사 상장 방안 초안은 17년을 끌어온 금융권 최대의 난제를 풀어낼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생보사의 성격을 `상호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로 명백하게 못박으면서 보험업계와 시민단체간의 논란의 핵심을 제거하며 생보사 상장의 원초적인 걸림돌을 없애주는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생보사 상장 차익에 대한 계약자들의 몫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나서면서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고 있어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상장자문위원회가 2003년 당시 1조5천억원 정도를 상장 차익으로 내놓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계약자들의 `정서적'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또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1990년 자산재평가를 통해 적립한 내부유보액을 유일한 계약자 몫으로 인정함에 따라 앞으로 내부유보금 규모의 재산정과 처리 방향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밖에 이번에 유.무배당상품의 구분계리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자산재평가 및 평가차익 배분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도 숙제로 남겨두고 있어 최종안 도출까지는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

◇ 논리적 근거로 상장 걸림돌 제거 = 상장자문위는 정부의 지침에 살을 붙이는 정도에 불과했던 예전 상장자문위와는 달리 종전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과학적인 상장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장자문위는 이번 생보사 상장 방안 논의의 출발점으로 생보사의 성격을 설정하고 먼저 법률 담당 자문위원의 검토를 통해 국내 생보사의 성격이 상호회사가 아니라 주식회사라는 점을 분명히 정리했다.

이에 따라 보험계약자의 법적 지위도 자연스럽게 주주가 아닌 채권자로 규정하면서 지난 17년간 생보사 상장의 최대 걸림돌을 일거에 제거하며 생보사 상장 작업에 가속도를 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나동민 생보사 상장자문위원장은 "최종안 마련 일정을 점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의견 수렴과정등이 원만하게 진행되면 연말까지는 최종안과 상장규정 개정작업이 마무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문위원은 "따라서 늦어도 내년에는 상장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금호생명과 동양생명 등 중소형 생보사를 시작으로 생보사들의 상장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들은 기존 검토내용을 보면 학문적 근거나 구체적인 계리에 근거하지 않고 이해 당사자들의 정서와 정치적 논리에 의거해 상장 방안을 논의했지만 이번에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고 자평했다.

이들은 특히 계약자 배당의 적정성 문제와 관련, `자산할당모델'과 `옵션모델' 등 과학적인 방법론을 도입했으며 이번 방법론의 공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국제적인 회계기관의 검증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 반발여론 해소가 `숙제' = 그러나 이번 상장자문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출된 결론이 사실상 보험업계의 기존 주장을 대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경실련을 대표하는 권영준 경희대 교수와 참여연대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상장자문위의 이번 결론을 삼성생명을 위한 상장 방안으로 결론짓고 공청회 토론 참석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특히 상장 차익에 대한 계약자 몫을 완전 부정한 것은 1999년과 2003년 당시 상장자문위원회가 논의했던 내용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어서 과학적인 근거에도 불구하고 정서법상 반발이 생기고 있다.

2003년에도 상장자문위원장을 맡았던 나동민 위원장조차 당시 "내부유보액이 자본계정에 계상돼 결손보전에 사용할 수 있었다"면서 "이는 상장이익의 배분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지난 6월21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생보사 기업공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정재욱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상장안에 대해 "계약자의 주장을 완전히 배제한 방안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상장자문위는 법률적, 학문적, 회계적 논리에 입각해 생보사 상장의 쟁점에 관한 입장만 제시할 뿐이라는 입장이어서 결국 반발여론 해소의 문제는 상장자문위의 몫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해 당사자인 삼성생명 등 보험사들이 국민 정서상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의 `실탄'을 자발적으로 내놓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생보사 상장 문제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석 기자 ysk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