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무조립기는 먼저 예열부터 시켜야 돼.그런 다음 슬러리(slurry)에 이 파이프를 꽂고…."

경남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 공과대학 연구실. 홍경표 쎄노텍 대표(36)가 이 대학 재료공학부 학생들에게 기계 작동법과 원리를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학부생들을 모아놓고 간단한 기계 작동 원리를 가르치는 홍 대표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홍 대표도 한때 학생 신분으로 연구실에서 한솥밥을 먹었고(학부 89학번),졸업한 다음 회사를 차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후배들과 함께 산·학·연 프로젝트에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쎄노텍은 경남대 공대 실험실벤처 1호이다 보니 학교와의 관계가 좀 더 돈독할 수밖에 없다.

홍 대표는 4명의 실험실 연구원과 함께 '세라믹 비드(세라믹으로 만든 구슬)' 제조방법을 연구하다 1998년 '세라믹연구개발'이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벤처기업의 기초는 경남대학교 창업보육센터 보육지원 사업의 도움을 받으며 닦아 나갔다.

학교와 사업장을 넘나들며 일하는 홍 대표에게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시가 40억~50억원 상당의 실험장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 학교의 조치다.

그는 "중소기업이 실험장비에 40억~50억원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쎄노텍은 산·학·연 프로젝트로 직경 0.1mm 이하의 고기능성 세라믹 투사제 양산과 다성분 세라믹 분쇄·분산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쎄노텍은 현재 주력 제품인 세라믹 비드(브랜드명 '쎄노비드')의 부가가치를 수배에서 수십배 더 높일 수 있다.

세라믹 비드는 금속을 미세한 가루로 깰 때 연마제로 쓰이거나 플라스틱 표면을 갈아내는 등의 용도로 쓰이는 작고 단단한 구슬이다.

직경 0.1~0.2mm 세라믹 비드의 경우 금속을 100nm(10억분의 1m)의 미세한 가루로 분쇄한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300~400nm 크기의 금속입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0.3~0.5mm 세라믹 비드 제품.쎄노텍이 앞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보다 더 작은 0.1mm 이하의 세라믹 비드다.

0.1mm 이하 크기의 세라믹 비드는 금속을 100nm 크기로 분쇄할 수 있으며,0.3~0.5mm 비드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값에 팔린다.

또 미세하게 분쇄한 금속 가루를 일정 농도의 액체 상태로 만들면 단순히 세라믹 비드를 파는 것보다 20배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액체 상태의 금속 가루는 LCD의 BLU(백라이트 유닛) 코팅제 등 각종 전자부품에 이용되므로 수요도 많은 편이다.

이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태.이 연구에 꼭 필요한 장비와 노하우를 학교 연구소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쎄노텍에 큰 힘이 된다.

또 산·학·연 프로젝트에 투입돼 현장 기술을 익힌 졸업생을 바로 채용할 수 있어 우수 인력 확보의 어려움도 덜 수 있다.

현재 쎄노텍 직원 27명 중 절반인 13명은 경남공대 신소재공학부나 재료공학부 출신이다.

홍 대표는 "매년 세라믹 분야 전공으로 졸업하는 학부와 대학원 후배 중 2~3명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졸업생 취업난의 일정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경남공대에서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쎄노텍에 취업한 강봉상 팀장은 "사장님이 잘 아는 선배인 데다 내 전공도 살릴 수 있어 쎄노텍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경남공대 학부 93학번이다.

이처럼 쎄노텍과 윈윈(win-win)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학교측은 올해 초 '쎄노텍 부설 부품소재연구소'용으로 연구실 한 쪽을 내주었다.

이 연구소 설립에는 중소기업청도 산·학 협력 기업부설 연구소 지원 자금으로 1억여원을 지원했다.

쎄노텍은 학교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기탁,학교의 후의에 화답했다.

홍경표 대표는 "학교와 꾸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던 것이 산·학·연 성공 비결"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 프로젝트를 마치고 상용화한 제품을 내놓는다는 목표를 꼭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산=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