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씩 돌아가며 공평하게 마시는 '폭탄주 문화'로 불리는 한국적 정서를 결코 이해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정서에 매달릴 수 없었습니다. 가령 교수 개인들 간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에 이끌렸다간 외국의 글로벌 대학들과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외국인으로 처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으로 부임해 이른바 러플린식 대학개혁을 추진하다 교수들의 반발에 부딪쳐 재임에 실패한 로버트 러플린 총장(56)은 자신의 일은 이제 끝났으며 후회나 안타까움은 없다고 29일 밝혔다. 그는 내달 14일 이임식을 가진 뒤 곧바로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한국정부가 KAIST 학생 한 명에 쓰는 예산은 평균 2000만원입니다. 이 학생이 졸업하면 인력자산 가치는 평균 20억원이상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한국정부는 수익성이 보장되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러플린 총장은 그러나 이처럼 괜찮은 대학을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해 연구의 자율성을 해치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가 일부 분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연구는 본래 향후 15년 뒤에 사회에서 써먹을 기술들을 공부하고 개발하는 게 목적입니다. 따라서 정책적 개입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연구가 일부 분야에 집중될 경우 후유증이 나타날 우려가 있어요. 만약 그 분야가 시장에서 인기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실업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러플린 총장은 조만간 KAIST 재직 당시의 경험을 담은 책 '한국은 영웅을 찾는다'를 발간해 한국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의견과 한국사회에 대한 소회를 밝힐 생각이다. 그는 서남표 총장 내정자가 취임하면 그에게 각종 현안들을 자문해주는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오

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