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에 주식투자를 했던 분들은 '물타기' 증자라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기업공개나 유상증자를 앞둔 기업이 새로 주식을 발행해서 무상으로 기존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행위로서 엄밀히 말하면 무상증자다.

이를 물타기라고 부르는 것은 그 과정에서 주식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만 보면 물타기 증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1주의 가치는 기업의 가치를 주식의 숫자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 가치가 1억원인 기업 A가 1만주의 주식을 발행했다면 1주당 가치는 1만원이다.

무상증자는 주식 숫자를 늘려서 1주당 가치를 낮춘다.

위 기업이 1만주를 더 발행해서 기존 주주들에게 구주 1주당 신주 1주씩을 무상으로 배정한다면,주식 수는 2만주로 늘고 1주당 가치는 1만원에서 5000원으로 떨어진다.

반면 무상으로 신주를 배정받은 주주들의 재산 가치는 달라질 것이 없다.

다만 과거에는 1만원짜리 1주를 가진 사람이 무상증자 후에는 5000원짜리로 2주를 가지게 될 뿐이다.

그러니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기 위해 회사의 노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과거의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면 무상증자라는 것을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계산이 그러한데도 우리 기업들이 물타기를 했던 이유는 정부가 주식을 제 값에 팔지 못하도록 기업들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액면금액으로만 팔게 했고,1980년대 말에 소위 자유화라는 것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값으로만 신주를 공모할 수 있었다.

공모주 청약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렸던 이유는 싼 값에 신주를 배정받아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신주 공모 가격 규제는 시장경제 원칙의 중대한 침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며,신주를 공모한다는 것은 주인이 자기 재산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공모 가격 규제는 그런 주주들에게 재산을 실제 가치보다 헐값에 매각하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정부가 기업의 주인도 아니고,기업 가치의 현금화를 허용하는 것이 특혜를 주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누가 앉아서 자기 재산을 뺏기려고 하겠는가.

그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물타기였다.

예를 들어 1만원짜리 주식을 5000원에 매각하라고 하니까 주식 수를 두 배로 늘려서 1주당 가치를 5000원으로 희석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의 정치인들과 여론은 기업주를 악한으로 매도했다.

물타기로 부당하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비난에는 여당과 야당이 같은 목소리를 냈고 보수와 진보의 구별도 없었다.

결국 공개 전 물타기를 억제하는 법이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물타기를 안하고 규제를 당할 때보다 물타기를 할 때 기업주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부당한 것은 아니다.

물타기는 자기들이 창출한 기업의 가치를 최대한 현금화시키기 위한 시도였지,부당하게 남의 것을 훔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주의 공모 가격을 규제하고,물타기를 억제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부당하게 앗아가는 일이다.

다행히 외환위기 이후 진정한 시가발행이 허용되었고,물타기도 거의 사라졌다.

시가대로 팔 수 있는 상황에서 번거롭게 주식가치를 희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모 가격 규제와 물타기 규제는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반성하는 사람은 없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