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 응원 열기로 전국이 뜨겁게 달궈졌던 지난 17일 경기도 팔당댐 수력원자력발전소 잔디구장.동원F&B 등 4개팀 친선 축구경기가 한창인 이곳에 등번호 11번을 새긴 자그마한 체구의 선수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붉은 헤어밴드와 고글을 쓴 화려한 패션과 예사롭지 않은 발재간을 보여주며 운동장을 누빈 주인공은 올해로 회갑을 맞는 박인구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60).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생년월일이 똑같다.

"그 양반(히딩크)은 감독으로 뛰고 있지만 나는 실전에서 뛰고 있으니 체력은 내가 한수 위인 셈"이라고 말하는 박 부회장은 이날도 3개팀과 20분씩,5게임을 거뜬히 소화해 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공무원 출신(상공부 부이사관)인 박 부회장은 상공부 재직시 알아주는 축구 마니아였다.

축구이론뿐만 아니라 재정경제부와 함께 정부 부처 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상공부 축구동호회 주장을 맡았을 정도의 실력파이기도 하다.

경기 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박 부회장은 '스피드,팀워크,각본 없는 드라마' 등 세 가지 점이 기업경영과 닮았다는 생각에 축구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보면 글로벌 기업경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한국 대표팀이 독일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결코 행운이나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국제경쟁력을 갖춘 감독과 선수들로 한국 대표팀이 짜여졌기에 가능한 일이죠.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기업의 CEO뿐만 아니라 임직원 모두가 국제경쟁력을 갖춘다면 세계 기업 월드컵에서 우승신화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변화무쌍한 기업환경에 한 발 앞서 적응(스피드)하고 임직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유기적인 협력관계(팀워크)를 구축한다면,글로벌 기업경쟁(월드컵)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부회장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개인 차원을 넘어 한국 축구의 저변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로 한국 유소년 축구를 지원한 지 6년째.매년 3억원씩 지원하고 있다.

미래 한국 축구를 이끌 꿈나무들을 국제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키우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

"월드컵이나 국가 간 대항전에선 국민 모두가 뜨거운 응원을 보내지만 정작 국내 프로축구는 관객들이 외면합니다.관중의 눈높이에 맞춘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죠.현재 지원하는 유소년 선수들이 프로리그에 진출할 때쯤이면 영국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프로리그 못지 않은 K리그가 될 겁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