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업에서 '월드컵 올인'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내수 업종의 경기 쏠림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월드컵 특수(特需)를 즐기고 있는 업종 못지않게 급속한 수요 감소로 '월드컵 날벼락'을 맞은 기업들이 적지 않은 것.월드컵 호황을 누리고 있는 기업들도 걱정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 동안의 이벤트성 '반짝 경기'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와 같이 관련 업종에 착시 현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대형 TV 등의 경우 월드컵 열기에 취해 소비를 앞당기는 경향이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하반기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라 전체가 월드컵 열풍에 지나치게 휩싸임에 따라 가뜩이나 고유가·환율 불안 등 거시경제 변수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월드컵 올인'으로 날벼락 맞은 건설업계

가장 위기 의식을 느끼는 곳은 건설업계다.

경기 하락에 대한 우려와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미분양 가구수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은 가뜩이나 가라앉은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 관심이 온통 월드컵에 쏠리면서 건설업체들은 신규 분양 사업을 잇따라 하반기로 미루고 있다.

올초 반짝 상승세를 보였던 건설 경기가 판교 중·소형 분양과 3·30대책이 겹치면서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까지 겹쳐 3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GS건설은 서울 마포와 용인 성복동 아파트 분양을 오는 7월 이후로 미뤘다.

현대건설도 알짜로 꼽히는 서울 성수동과 용인 상현동 사업을 하반기로 일단 연기했다.

8월 중순 이후로 예정된 판교신도시 2차 분양이 시작되기 전에 신규 분양을 해결하려던 수도권 및 지방 비인기 지역 아파트 분양업체들은 특히 '날벼락'을 맞았다는 반응이다.

분양 대상자들이 월드컵 관전 열기에 들뜨면서 모델하우스 등을 찾는 내방객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 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판교 중·대형 분양 외에는 수요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자칫 중소 주택건설업체들은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 심해지는 경기 양극화

출판 영화 공연 등 문화산업계도 월드컵 직격탄에 신음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극장 체인인 CJ-CGV는 월드컵 개막 이후 평소 관객의 10~20%가 줄었고 롯데시네마도 2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토고전이 열린 지난 13일에는 40%씩 빈 자리가 늘었다.

단일 복합영화관들 역시 월드컵 개막 이후 30% 이상 손님이 줄었다.

출판업계도 이달 들어 30~50% 정도 매출이 줄어들었다.

김기옥 한스미디어 대표는 "이달 들어 매출이 줄기 시작하더니 월드컵 개막 직후부터는 30% 이상 곤두박질하고 있다"며 "다음 달 초까지는 월드컵 폭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새벽 도매시장이 주로 열리는 서울 남대문 동대문 등의 도매 상인들도 장사를 공치는 날이 늘어 울상이다.

새벽에 서울로 원정 구매에 나서야 할 지방 소매상들이 월드컵 경기로 인해 좀처럼 올라오지 않기 때문.

의류업계 전반적으로도 올 4월 이후 약 400만장 정도의 빨간 티가 팔려나가는 등 월드컵과 관련한 일부 의류제품은 호황을 맞았지만 나머지 일상 의류의 판매는 오히려 저조한 양상이다.

올 들어 각 패션업체는 의류 경기가 최악이었던 작년 초보다는 매달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신장률은 5월까지 10% 이상의 두자릿수에서 대부분 한자릿수로 내려앉은 것.




○월드컵 마케팅 '부메랑' 우려도

최근 일부 업종의 월드컵 특수 역시 소비자들의 선(先)구매에 의한 '쏠림' 측면이 강한 데다 기업들이 월드컵 기간 마케팅 총력전을 폄에 따라 7월 이후엔 상대적인 마케팅 여력 소진의 역효과도 우려되고 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보고 즐기면 되는 월드컵이 광적인 열기로 치달을 경우 사회 전체의 에너지 낭비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경기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과 고유가 대책 등 주요 이슈들이 감각적인 월드컵 열풍에 논의의 우선 순위를 빼앗겼다"며 "사회 전반이 차분하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동민·차기현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