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등단한 소설가 김연(43)씨가 6년 만에 신작 장편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소설은 인터넷 공간에서 '치자'와 '오디'라는 아이디로 만난 두 여성이 겪는 특별한 사랑이야기다.

도입부의 화자인 치자는 요절한 기형도의 기일인 3월7일 시인의 시에서 빌린 '내 영혼의 검은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허공의 집,블로그를 만든다.

'보랏빛으로 죽어가는 그녀들의 입술 앞에서 이렇게라도 굳어버린 나의 혀를 녹여 살아 있고' 싶어서다.

다음 장의 화자 오디는 같은 날 철야수당 없는 철야작업 뒤 귀가하다 지하철에서 치한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PC방에서 자신의 블로그 '판타스틱 소녀 백서'를 업그레이드한다.

소설은 치자와 오디가 번갈아 일인칭 화자가 되어 팍팍하고 버거운 일상을 살아내는 정황을 고백하듯 이야기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치자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학원강사로 끝없는 빈곤과 가부장제 폭력에 찌들어 수시로 자살충동을 느끼는 여성이다.

이에 비해 오디는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애니메이터로 대학교수 아버지와 교양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동딸이다.

성격도 털털하고 당당하다.

두 사람은 자란 환경이나 성격,외양 등은 판이하지만 공통점도 갖고 있다.

둘 다 최승자 시인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라고 갈파한 서른살이며,미래 없는 비정규직이며,성적 소수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이 사회의 모든 억압과 폭력,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분노하고,아파한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차츰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면서 분노와 상처를 넘어 자신들을 옭아맨 현실의 제약을 과감히 거부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용기는 새로운 삶을 여는 원천이 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