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 넘치는 문화사랑방으로 오세요"… 시인학교 다시 문연 정동용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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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하고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인데 한 5~6년은 된 느낌입니다.
앞으로는 문 닫는 일 없이 200년이고 300년이고 계속되는 학교로 키워나가야죠."
문인의 사랑방 구실을 해온 문학카페 '시인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2004년 6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꼭 2년 만이다.
장소는 인사동에서 안국동으로 옮겼다.
비록 넓지도 않고 지하이긴 하지만 어렵사리 다시 문을 연 시인학교의 '교장' 정동용 시인(46)은 할말이 많은 듯 했다.
"'시인학교'는 제 개인의 공간이 아닙니다.
누구나 와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시를 이야기하고 직접 시를 지을 수 있는 열린 곳이지요.
시인학교를 다시 열지 못한다면 평생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가난하고 돈 없는 시인들이 갈 곳이 없어지잖아요.
언젠가 다시 열어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테이블과 찬장은 물론 그릇과 식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변 지인들에게 모두 맡겨 놓았었습니다."
학교를 닫고 졸지에 '실업자'가 된 '교장'은 그동안 안해본 일이 없다.
막노동에서부터 장작통닭구이,부채장수 등 '팔자'에 없던 온갖일을 다했다.
얼마전엔 멋모르고 인사동에서 노점상을 열었다가 노점상연합회 사람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집은 그동안 2번이나 날렸다.
그토록 매달리는 '시인학교'는 정 시인에게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시인학교'는 시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허무는 곳입니다.
이 곳에 와선 '나도 시인이 될 수 있구나'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사실 차와 술이 곁들여지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시인학교를 운영하면서 이런 저런 일이 많았지만 기형도 시인의 일화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1989년 3월이었죠. 기형도 시인이 죽기 전날 우리 '시인학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따라 아는 얼굴이 한명도 없더래요.
그때 저라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지는 않았을 걸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시인학교'에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전화문의를 지금도 가끔 받는다는 정 시인은 평생 휴업없고 방학없는 학교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꿈이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시낭송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시창작교실도 자주 가질 생각이구요.
한번 이곳에 발을 디디면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야죠.
입학은 있지만 졸업은 없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안국동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제2,제3의 시인학교를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시인학교의 재개교 개업식은 8일 오후 7시 떡과 막걸리를 곁들인 파티로 열린다. (02)735-1984
글 김재창ㆍ사진 김영우 기자 charm@hankyung.com
앞으로는 문 닫는 일 없이 200년이고 300년이고 계속되는 학교로 키워나가야죠."
문인의 사랑방 구실을 해온 문학카페 '시인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2004년 6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꼭 2년 만이다.
장소는 인사동에서 안국동으로 옮겼다.
비록 넓지도 않고 지하이긴 하지만 어렵사리 다시 문을 연 시인학교의 '교장' 정동용 시인(46)은 할말이 많은 듯 했다.
"'시인학교'는 제 개인의 공간이 아닙니다.
누구나 와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시를 이야기하고 직접 시를 지을 수 있는 열린 곳이지요.
시인학교를 다시 열지 못한다면 평생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가난하고 돈 없는 시인들이 갈 곳이 없어지잖아요.
언젠가 다시 열어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테이블과 찬장은 물론 그릇과 식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변 지인들에게 모두 맡겨 놓았었습니다."
학교를 닫고 졸지에 '실업자'가 된 '교장'은 그동안 안해본 일이 없다.
막노동에서부터 장작통닭구이,부채장수 등 '팔자'에 없던 온갖일을 다했다.
얼마전엔 멋모르고 인사동에서 노점상을 열었다가 노점상연합회 사람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집은 그동안 2번이나 날렸다.
그토록 매달리는 '시인학교'는 정 시인에게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시인학교'는 시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허무는 곳입니다.
이 곳에 와선 '나도 시인이 될 수 있구나'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사실 차와 술이 곁들여지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시인학교를 운영하면서 이런 저런 일이 많았지만 기형도 시인의 일화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1989년 3월이었죠. 기형도 시인이 죽기 전날 우리 '시인학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따라 아는 얼굴이 한명도 없더래요.
그때 저라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지는 않았을 걸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시인학교'에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전화문의를 지금도 가끔 받는다는 정 시인은 평생 휴업없고 방학없는 학교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꿈이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시낭송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시창작교실도 자주 가질 생각이구요.
한번 이곳에 발을 디디면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야죠.
입학은 있지만 졸업은 없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안국동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제2,제3의 시인학교를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시인학교의 재개교 개업식은 8일 오후 7시 떡과 막걸리를 곁들인 파티로 열린다. (02)735-1984
글 김재창ㆍ사진 김영우 기자 char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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