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개혁의 시동을 걸고 있다.

1977년 건강보험 도입 이후 30년 만이다. 하지만 개혁의 성공 여부는 점치기 힘들다. 정부나 소비자나 모두 개혁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온 관행을 깨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다.

'복지천국'이라 불리는 유럽 선진국은 어떨까.

독일 영국 등 의료 선진국의 의료개혁 현장을 찾아 의료개혁 성공의 해답을 찾아봤다.


독일의 민간보험회사인 DKV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회사'다.

매출이 2002년 이후 매년 두 배로 늘어나고 순익도 연평균 44%의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엔 한국에도 사무소를 개설하고 민간보험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런데도 지난 23일 독일 쾰른 본사에서 만난 크리스티안 뷔르거 전략 담당자는 "앞으로 거는 기대가 더 크다"며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완벽한 의료보장으로 '복지천국'이라 불리는 독일에서 이처럼 민영보험회사가 '활개'치는 일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AOK(독일 공보험)의 브레멘주 옌 홀스 공보관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지난해 의료비 지출은 약 2600억유로(약 520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1%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비중은 미국 다음이고 유럽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홀스 공보관은 그러나 "고령화로 정부가 앞으로도 의료비 지출을 모두 감당하기는 버거운 실정"이라며 "정부가 보장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민영보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목적의 모든 진료에 대해서는 100% 공보험을 통해 비용을 지불해주고 있지만,성형목적의 수술이나 의치,1인실 사용 등의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보충형' 민간보험을 들어 해결토록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수입 4만5900유로(5500만원) 이상의 자영업자·근로자들과 일부 공무원들에게는 공보험과 민영보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고비용 고서비스'의 기회를 터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민간보험을 활용하면 공보험의 틀은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독일은 고령화 등으로 공보험 지출이 급격히 늘고 있어 보험료를 올리든지,보장범위를 줄이든지 해야 할 판이다. 때문에 의료개혁은 지난해 총선에서도 핵심 이슈로 떠올랐었다.

그러나 보험료 수입을 올리기는 사실상 힘든 상태. 공보험료는 1991년 월수입의 12.2%에서 지금은 14.3%로 올랐다. 최근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보험재정이 고민거리다. 선거공약으로 의료개혁방안을 내년 1월까지 내놓겠다고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논의의 중심은 보험료 인상보다는 지출 구조조정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독일이 2009년부터 포괄수가제(DRG·질병단위로 진료수가를 정하는 제도)를 세계 처음으로 전 의료기관,전 의료행위에 전면 적용키로 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가능했다. 감기나 외상수술뿐 아니라 정신치료나 고도기술을 요하는 수술의 가격도 미리 정해 놓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들은 환자를 오래 입원시킬 필요가 없어진다.

자연스럽게 입원 일수가 줄고 공보험 지출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독일 정부는 DRG 전면 도입으로 줄어든 예산을 활용,공보험료를 월수입의 14.3%에서 13.3%로 1%포인트 인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독일 정부는 급증하는 약제비를 잡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격 대비 효과가 좋은 약품만 공보험 급여대상으로 삼는 포지티브 방식의 보험약 등재방식은 의료계의 반대로 도입에 실패했지만 과도기적 조치로 참조가격제(동일성분 의약품의 평균가격보다 높은 약품 사용시 본인이 부담토록 한 제도)에 이어 내년 1월부터는 의사들의 약물 성분별 처방량을 법으로 규제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키로 했다.

자비네 에어바 PKV(독일 민영보험업협회) 홍보담당관은 "독일 의료개혁의 핵심은 튼튼한 공보험 체계를 유지하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 공보험과 민간보험 간,정부와 의료계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멘(독일)=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