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에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탄압한 마지막 로마 황제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박해는 무자비해서 주민 전체가 기독교인이던 어떤 마을에서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것을 태워버릴 정도였다.

그는 파멸적인 경제정책을 편 것으로도 유명하다.

3세기 말께 게르만족의 침입이 증가하자 그는 군대를 대폭 늘리기 위해 국방예산을 증액하면서 세금도 크게 늘렸다.

그렇게 해서 조세 수입을 늘렸지만 신행정수도인 니코데미아 건설에만 충당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시민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는 것으로 늘어난 재정 수요를 충당해 보려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급기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돈을 찍어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에 이른다.

엄청나게 늘어난 동전은 화폐 가치를 낮추고 물가를 올렸다.

가뜩이나 어렵던 로마 경제는 기진맥진 상태에 빠졌다.

이런 사태에 대한 황제의 대응은 적반하장 격이었다.

물가 상승의 원인이 바로 자신의 통화 남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황제는 비난의 화살을 상인들의 탐욕으로 돌렸다.

그래서 기원후 301년에 황제는 '최고 가격 칙령'을 반포했다.

수천 가지 생필품의 가격을 동결하고,임금도 최고 가격으로 묶어 버렸다.

누구든지 그 값 이상으로 물건을 팔 경우 사형에 처해 버렸다.

정해진 값보다 높은 값에 물건을 사는 사람도 같은 형으로 다스려졌다.

처음에는 물가가 잡히는 듯했지만,시간이 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했다.

정상적인 거래 대신 물물교환이 성행했다.

상인들은 통제된 값으로는 물건을 팔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당국은 매점매석 죄로 다스렸고,상인들은 아예 가게 문을 닫고 폐업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화가 난 황제는 이번에는 법으로 모든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서 사업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 법을 어기면 역시 사형이었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없어졌고,직업조차 세습하는 중세의 암흑사회를 예상하게 할 정도가 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부동산정책은 이 이야기를 많이 닮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매우 낮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회사채 유통수익률을 기준으로 볼 때 외환위기(IMF) 이전 13%이던 것이 지금은 4%까지 내려왔다.

통화 남발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초래하듯이 낮은 금리는 주택이나 토지와 같은 자산 가격에 상승 압박을 가한다.

당연히 범 세계적 주택가격 상승이 나타났다.

1997~2004년에 남아공은 227%,아일랜드 187%,영국 139%,미국이 65% 상승했다.

한국은 21%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금리가 낮아져서 오른 주택 값을 투기 단속과 세금으로 잡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많이 닮아 있다.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을 두드리는 일도 딱하다.

지금까지 서민주택·국민주택만 공급하느라 5개 신도시 이후 고급 주택지는 공급하지 않았다.

고급 주거지용이던 판교마저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서민 주거지가 되어 버렸다.

공급이 많은 서민주택 가격은 내리고,공급을 게을리한 고급 주택지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장의 반응이다.

기존 고급 주거지의 높은 가격은 버블이 아니라 내재가치다.

그런데도 그런 지역에 온갖 비난과 제재를 쏟아붓는다.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또 다른 정책으로 응징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