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투자는 하지 않고 벌어들인 돈을 회사 내부에 쌓아두기만 하면서 유보율(잉여금/자본금)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반면 설비 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고갈되기 직전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빠른 시일 안에 설비 투자가 회복되지 않으면 기업들의 수익성은 물론 전체적인 국가 경제의 성장 탄력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금을 쌓아만 두는 상장사

22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 제조업체 487개사(관리 종목 및 전년과 실적 비교가 불가능한 기업은 제외)의 지난 3월 말 현재 유보율은 평균 614%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의 607%보다 7%포인트 높아졌다.

2004년 말 507% 수준이던 유보율은 지난해 말 600% 이상으로 올라선 뒤 계속 올라가는 양상이다.

지난해의 경우 기업 잉여금은 305조9억원으로 1년 전보다 2.2%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자본금(49조6773억원) 증가율이 1%에 그치면서 유보율은 더 높아졌다.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인 유보율은 영업 활동이나 자본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 가운데 얼마만큼을 회사 내에 쌓아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비율이 높으면 통상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무상 증자,자사주 매입,배당 등을 위한 자금 여력이 크다는 의미를 갖지만 투자 등 생산적 부문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고 고여 있다는 부정적 측면도 지닌다.

거래소 관계자는 "고유가,원화환율 하락 등의 여파로 기업들의 순이익이 작년보다 줄긴 했지만 꾸준한 이익을 내면서 잉여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대 그룹의 유보율은 지난해 말 651.8%에서 올 3월 말 674.2%로 전체 평균보다 더 높아 대기업일수록 신규 투자를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룹별로는 삼성그룹이 1187.6%로 가장 높았고 SK그룹이 1128.7%로 뒤를 이었다.

롯데쇼핑 상장으로 3조5000억원의 주식발행 초과금이 유입된 롯데그룹 유보율도 981.2%나 됐다.

이어 △현대중공업 786.9% △한진 761.4% △현대자동차 511.4% △GS 390.0% △LG 364.1% △한화 181.5% △두산 125.5%의 순서로 조사됐다.


◆설비투자 부진 '성장 임계점' 도달

이에 반해 상장사 유보율 흐름과 반대로 움직이는 설비 투자는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2001∼2005년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1%로 1991∼96년의 평균 11.1%에 비해 10분의 1로 급락했다.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1971∼80년에는 19.6%,81∼90년에는 12.1%에 달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추락했다.

각종 규제로 기업들의 투자의욕 상실이 심화되고 있는 데다 외환위기 이후 일반화된 기업들의 위험회피 경영,노동시장 유연성 부족,중국 급성장에 따른 중소기업 채산성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앤디 시에 모건스탠리증권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증권업협회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증권포럼에서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유가 상승,환율 하락이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며 "설비 투자만이 향후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설비투자 증대는 임금인상 억제로 인해 악화된 소비심리 회복과 자산거품 억제를 위한 금융 긴축정책 추진 등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한국의 설비 투자는 2001년 이후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제조업 공동화 및 경기 둔화로 인해 억제돼 왔다"고 덧붙였다.

송병운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도 "장기화된 투자 부진이 앞으로 국내 기업의 경쟁력 상실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의 활력을 감소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