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가 잇단 악재로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을 놓고 "무리한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검찰 조사를 받던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이 갑작스럽게 자살하면서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외적으로 대검 중수부는 여전히 "향후 수사는 일정대로 간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비자금의 용처 수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사실상 '끝내기 수사'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시 국장은 왜 자살했나

15일 오전 10시께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광동리 팔당호에서 보트를 타고 순찰을 돌던 팔달 상수원 관리사무소 한강감시원이 강물에 떠 있는 박씨의 사체를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박씨의 유족은 경찰에서 "(박씨가) 어제 저녁부터 얼굴빛이 어두웠다"며 "오늘 오전 6시께 집(서울 동작구 사당동)을 나갔는데 퇴촌면 원당리 부모님 묘소를 찾아뵌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가 광동교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서울시의 현대자동차 사옥 증축 인허가 경위에 대한 기초 조사 과정에서 박씨가 현대차로부터 그랜저XG를 730만원 할인된 2934만원에 구입한 품의서를 압수해 네 차례 소환 조사했고,정확한 구입 경위 등을 밝히기 위해 오늘 오전 9시30분 출두하도록 통보했었다"고 밝혔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조사 과정에서 무리한 점은 없었다.

박씨는 조사실이 아닌 공개된 사무실에서 조사받았고,변호인이 조사 과정을 전부 다 알고 있다"며 강압 수사 의혹을 차단했다.

박씨는 대검 중수부 조사에서 2934만원을 처남에게서 받았다고 진술했으며,지난 12일에는 처남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주택국장으로 근무할 당시 서울시 건축위원회 위원장 겸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 증축 인허가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금까지 검찰 조사를 받다가 이준원 전 파주시장,이수일 전 국정원 국내담당2차장,정몽헌 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안상영 전 부산시장,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박태영 전 전남지사 등이 자살한 바 있다.

○비자금 사용처 수사는 오리무중(?)

정몽구 회장을 구속할 때까지만 해도 전광석화와도 같던 검찰 수사가 요즘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정 회장이 120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에 대해선 밝혀냈지만 이를 어디에 썼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이날 아침 정의선 사장을 비롯 현대차 관계자에 대한 일괄 기소의 연기를 지시했다.

검찰은 당초 정 사장을 제외하고는 16일 일괄 기소할 예정이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비자금의 구체적 사용처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채 기획관은 이날 아침 박씨 죽음과의 연관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라고 답했다.

박씨는 현대차 사옥 증축 인허가와 관련,검찰 수사를 받아온 서울시 관계자 중 최고위급이었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의 사옥 인허가 로비의혹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의 한 축이 마비된 셈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결국 현대차 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텐데 검찰이 모양새 갖추기에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