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을 대표하는 초대형 기업들조차 좀체 신규 투자를 늘리지 않아 대외경쟁력 유지 및 수익성 개선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신용평가와 함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대표기업 3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총투자비 32조3000억원의 64% 가까이를 신규 투자가 아니라 기존 설비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감가상각용 경상투자에 사용했다.

이 비율은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신규 투자가 위축된 상태다.

외환위기 직전인 96년의 경우 감가상각용 투자 비중이 40.4%에 불과했던 반면 신규 투자 비중은 59.6%에 달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뒤바뀐 신규 투자와 감가상각용 투자 비중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기업 투자 부진의 요인으로 △외국자본 및 소액주주의 영향력 강화에 따른 배당금 부담 증가와 △외환위기 이후 자리잡은 지나친 재무건전성 위주 경영 등을 꼽고 있다.

실제 36개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2001년 205.2%에서 지난해 말 89.9%로 급락했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001년 34.4%에서 19.1%로 떨어졌다.

이 같은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미국(부채비율 141.2%,차입금 의존도 22.9%,2004년 기준)과 일본(145.4%,28.7%)에 비해서도 오히려 양호한 수준이다.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늘어난 이익금 등으로 기존 부채를 열심히 갚아온 결과다.

송병운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장기화된 투자 부진으로 인해 국내 대기업들이 앞으로 양호한 대외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실적 개선 추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주요 대기업의 영업이익률과 EBITDA 마진(법인세,이자 및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비율) 등의 영업관련 수익성 지표 추이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크게 개선된 게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를 보면 실제 매출 증가에 힘입어 절대적인 영업이익 규모는 빠르게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8∼10%를 오르내리는 상황으로 외환위기 전과 비교할 때 확연히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36개 대기업의 EBITDA 마진 16.2%는 96년(18.5%)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일부 개선된 대목이 있다면 이는 경쟁력 향상 덕분이라기보다 차입금 상환 및 저금리에 따른 영업외비용 감소에 힘입은 바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리스크 회피 및 배당비용 증가→신규 투자 부진→기업 경쟁력 하락→수익성 하락'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배지헌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투자부진 장기화는 최근 왕성한 투자 확대를 꾀하는 일본 등 외국기업 흐름과 비교된다"며 "경쟁력 저하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