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허물고 나니 인정도 살고 이제야 사람 사는 동네 같아요."

어버이날인 8일 오후 1시.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우성아파트 1단지 마당에선 때 아닌 잔치판이 열렸다.

파란 대형 천막 아래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10여명이 모여 앉아 있고,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동대표인 허현진씨(61·여)는 "새롭게 조성된 공원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도 물어보고 어버이날을 맞아 어르신들께 효도도 할 겸해서 잔치를 벌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신도림 우성아파트 1·2차 단지는 지난해 서울시의 '담장허물기' 시범구역으로 지정된 곳.시는 구로구 구로1동 현대연예인아파트의 담장 86m 허물기 사업도 지원,벽천 분수와 연못 벤치 등을 설치토록 했다.

우성아파트는 시가 지원해준 2억원으로 아파트 담을 없애고 286m에 달하는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공사에 들어갔으며 준공 허가가 떨어진 지난달 28일 많은 주민이 손뼉을 쳤다.

담이 없어 좋아진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웃집에 사는 같은 반 친구와 집으로 온 신도림 초등학교 2학년 박모군(8)과 김모군(8)은 "다른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군과 김군은 "이 동네에서 담장을 허문 곳은 우리 아파트뿐이거든요.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해서 공기도 더 맑아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십수년이 넘도록 서 있던 콘크리트 담벼락이 철거된 뒤 '인심'도 나아졌다.

아파트를 나서던 한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열리는 잔치에 일손을 거들지 못해 연신 "죄송하다"며 쑥스러운 듯 인사를 건네자,일을 하던 아주머니들이 "괜찮다"며 화답했다.

연세가 지긋한 한 할머니는 "기왕 차린 음식인데 먹고 가라"며 '지나가는 객'인 기자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정 나누기'가 서울 한복판에서 나타난 셈이다.

물론 담을 허물고 난 뒤 주민들에게 걱정도 한자락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화단에 물을 주고 청소도 도맡아야 되는 것이 주민들 몫이 됐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일부가 예쁜 화초를 뽑아가기도 하고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다.

애써 심어놓은 식물들이 노랗게 죽거나 화단 조성을 잘못해 지반이 가라앉게 된 것도 주민들의 근심거리다.

주민들은 당초 구청에 꽃나무를 심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구청은 예산을 초과한다며 화초 위주로 화단을 조성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 중 일부는 "정성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조성하는 바람에 화단이 잘못돼 버렸다"며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하지만 "담을 허문 뒤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부동산중개업소 한솔공인의 장명준 사장은 "주민들이 합심해 공원을 열심히 관리하다 보면 점점 더 살고 싶은 동네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올해 11억원의 예산을 들여 용산구 원효로 삼성아파트와 영등포구 양평동 삼호한숲·현대3차·신동아 아파트,신길동 우성4차·우성1차·건영 아파트 등 모두 7곳 아파트단지 1770m의 담장을 허물어 1000여평의 녹지를 만들 계획이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