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시 북부 토리파인스 지역의 한 버스정류장.'해피 블로팅(Happy blott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인간 유전자로 사람의 웃는 모습을 형상화한 부스광고가 눈길을 끈다.

유전자 검사의 일종인 블로팅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이 지역의 한 바이오벤처 업체가 설치한 광고다.

피터 토머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주립대(UCSD) 교수는 "이곳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광고"라며 웃어 보였다.

세계 최대의 바이오 산업단지인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의 한 풍경이다.

샌디에이고 바이오 클러스터는 '미국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통한다.

이곳에는 UCSD를 중심으로 반경 5km 안에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인 화이자를 비롯해 노바티스,머크,존슨앤존슨,쉐링프라우 등 제약회사의 연구소와 제넨텍,바이오셉트 등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모두 500여개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한 솔크와 세계 최대의 민간 비영리 의학연구소인 스크립스,줄기세포 연구로 유명한 번햄 등 쟁쟁한 생명과학 연구소들도 눈에 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바이오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 지역에는 새로운 기업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 클러스터의 비영리 국제협력기관인 '글로벌 커넥트'에 따르면 90년대 연간 1억5000만달러 정도였던 클러스터 벤처투자 유입 자금은 지난해엔 12억달러로 8배로 치솟았다.

바이오 기업 인력도 같은 기간 1만8000여명에서 3만여명으로 66% 정도 증가했다.

그렉 호로위츠 글로벌 커넥트 국장은 "샌디에이고에서 바이오기업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쇼핑몰 전체 면적보다도 많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는 세계 바이오 산업을 리드하는 핵심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UCSD는 줄기세포 전문가 래리 골드스타인 교수를 중심으로 복제배아 줄기세포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골드스타인 교수팀은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치매,루게릭병 등 뇌신경 질환 치료에 적용하는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제넨텍은 항체약품 4개를 비롯해 24개 신약에 대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바이오셉트는 임신 2~3개월이면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해 기형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단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메리 월샥 UCSD 부총장은 "과거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위치한 동부지역이 바이오산업이 발달했지만 이제는 샌디에이고 클러스터의 등장으로 미국 내 신약의 3분의 2가량이 샌디에이고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에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샌디에이고가 이처럼 세계적인 바이오 산업단지로 부상한 데는 지역 대학인 UCSD가 85년 도입한 '커넥트 프로그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람과 기술,자본을 연결시켜 창업을 돕고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UCSD에 속해있다 지난해 7월 독립해 나온 글로벌 커넥트가 현재 운영을 맡고 있다.

글로벌 커넥트는 비영리기관으로 기업들에 커넥트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비용을 받지 않는다.

대신 지역 주민들의 기부와 커넥트 프로그램을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변호사,회계사,기술자문가 등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커넥트 프로그램의 대표 과정으로 꼽히는 '스프링보드 프로그램'은 이들이 기술사업화에 나선 기업인에게 무료로 컨설팅을 해 자연스럽게 자신을 알리고 기업들은 사업화 전략을 보완하는 '윈윈 모델'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커넥트는 지금까지 스프링보드 프로그램으로만 1000여개의 기업의 기술사업화를 지원했으며 모두 62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시켜줬다.

이외에도 연구자와 기업인을 연결시켜주는 '연구자와의 만남',스프링보드 프로그램을 거친 기업들을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파이낸셜 포럼' 등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샌디에이고를 바이오기업들의 텃밭으로 일궈냈다.

커넥트 프로그램이 이같이 성공을 거두면서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는 올해부터 '대덕 커넥트 프로그램'을 운영해 벤처기업들의 기술사업화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에는 글로벌 커넥트와 국내 기술 경영 컨설팅 업체인 기술과가치(대표 임윤철) 공동주최로 UCSD에서 '테크노클러스터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기계연구원(KIMM) 등 9개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 10여명이 참가해 일주일간 커넥트 프로그램을 현지에서 직접 체험했다.

기술과가치의 미국 협력사인 BNSD의 정유진 대표는 "커넥트 프로그램이 대덕 클러스터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지역 정부출연연구기관들과 벤처기업들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샌디에이고=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