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 정치는 없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종합예술'이라는 오랜 정치 격언은 17대 국회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정치력은 뒤로한 채 힘의 정치만을 내세우는 여당과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야당 사이에 대화와 타협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이유다.

사학법 재개정문제를 둘러싼 여야 대결은 결국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과 제1야당의 반대속 강행처리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중재노력도 무위로 돌아갔다.

이 같은 정치 부재상황은 지난 연말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여당이 제1야당은 제껴놓은 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도움을 받는 형식을 취한 것도 판박이다.

여당은 사학법 재개정문제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내 고수했고,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과 민생법안 연계 방침으로 맞섰다.

더 이상 절충의 여지는 없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실력저지로 김원기 국회의장의 사회가 불가능해지자 열린우리당은 자당 소속의 김덕규 국회부의장을 앞세워 상정된 법안들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법안을 처리하려는 여당 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한나라당 의원들 간의 멱살잡이와 고성,욕설이 예외없이 되풀이됐다.

6개 법안이 통과되는 데 걸린 시간은 25분에 불과했다.

자연 부동산법안 등 중요한 법안들에 대한 본회의에서의 깊이 있는 논의과정은 아예 생략됐다.

격돌 후 각기 상대당을 공격하는 책임공방을 벌이는 구태도 여전했다.

여당의 법안 강행처리로 향후 정국은 한층 더 경색되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5·31 지방선거로 여야가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터라 적어도 한동안 여야 간 대화는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대결국면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치력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야당같은 여당'과 마치 과거 다수 여당 시절을 잊지 못한 듯 일방통행에 나서는 '여당같은 야당'의 모습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정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재창·양준영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