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영화 '간첩 리철진'(1999)과 '동해물과 백두산이'(2003)는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북한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한에서 겪는 소동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두 영화는 냉전체제의 종식과 남북한 해빙무드를 바탕에 깔고 만들어졌으나 군인이란 주인공의 신분 때문에 북한의 민심을 반영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

안판석 감독의 새영화 '국경의 남쪽'은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 진전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탈북 민간인이 분단상황에서 겪는 애틋한 사랑을 그린 멜로물이다. 분단이란 소재가 '쉬리' 등의 액션물이나 '간첩 리철진'류의 코미디에 그치지 않고 멜로로 확장된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연화(조이진)를 북에 남겨둔 채 남한으로 탈출한 선호(차승원)는 가혹한 현실에서 홀로서기를 하던 중 힘겹게 연인과 재회하지만 분단보다 높은 장벽과 마주치게 된다.

영화는 분단의 비극이 개인의 일상에 어떤 형태로 침투해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선호의 뼈아픈 사연은 한국전쟁 당시 생이별한 숱한 이산가족의 고난사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무거운 이야기는 가볍고 유쾌하게 전달된다.

선호가 평양사투리로 연화에게 사랑고백하는 장면을 보자.

"국사발에 네 얼굴이 동동 뜨니 그 얼굴만 쳐다보다 국이 다 식어버린다 야."

마치 한 세대 전의 애정 고백장면 같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이 잊어 버린 순진무구한 연정이 웃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으레 '헐벗고 굶주린' 것으로 그려져 온 북한 풍경도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다.

북한의 상류층 출신으로 호른연주자인 선호의 생활은 검소하지만 기품이 있다.

평양대극장의 혁명가극 공연,대성산 놀이공원에서의 데이트,옥류관에서의 냉면 식사 등 북한 배경 장면들도 비록 길지 않지만 실감이 난다.

선호가 남한에서 영위하는 삶이 오히려 초라하고 궁핍하게 느껴진다.

선호역 차승원은 첫 멜로영화에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연인과의 재회신에서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4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