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8일 우리측 동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수로를 측량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심각하면서도 단호한 상황 인식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여야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일본의 EEZ 도발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한 공개 회의도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EEZ 문제에 대한 첫 언급임에도 노 대통령은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조용한 외교'라는 지금까지의 대일(對日) 외교 기조를 변경, 일본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책을 할 수 있다는 점까지 시사했다.

이는 크게 두갈래 시각에서 일본의 이번 행위를 접근한데 따른 것이다.

하나는 일본의 잇단 국수주의적 행태에 대한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독도 문제'라는 현안과 연관짓는 것이다.

단순히 'EEZ 경계를 둘러싼 한.일 양국간 분쟁'이 사태의 본질이자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한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게 노 대통령이 EEZ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인식이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 등 일본 정부와 지도자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위 속에서 이 문제를 읽었다.

'개별 현안'으로 취급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에 대한 도발행위 등 을 종합하면 일본의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정권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미래 동북아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한일관계와 관련 '과거 앙금을 털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 동북아 질서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를 위한 일본의 '책임있고 성의있는 실천'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번번이 한국측의 기대를 묵살하는 듯한 행태를 보여왔으며, 급기야 주권 침해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우리측 EEZ 수로 측량 계획으로까지 그 수위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역사의 문제이자 미래 안보전략의 문제"라고 간주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은 "지금은 EEZ 문제이지만 기점에 관한 것이 핵심이며, 결국 독도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며 일본의 이번 계획이 실천에 옮겨질 때 미칠 파장을 염두에 뒀다.

현재까지는 '독도 문제'가 아닌 'EEZ 문제'이지만, 일본의 공격적 행위가 계속되고 독도 문제를 국제분쟁화하려는 의도가 들여다 보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비도 해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인식 아래 노 대통령은 조심스럽게 대일 대응기조의 변화 가능성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분쟁지역화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대응을 절제하는 조용한 외교를 수년간 해왔는데, 일본이 하나둘씩 공격적으로 상황을 변경하고 있다"며 "따라서 대응기조를 계속 가져갈 것이냐도 결정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언급을 당장 '전면적인 대일외교 기조 수정'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송민순(宋旻淳)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금의 문제는 일본이 먼저 작용하는 것이고 우리는 반작용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조용하지 못한 조치에 우리도 조용히 대처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은 '기조 변화'가 이번 EEZ 문제에 한정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현시점에서 이번 사태를 'EEZ 문제'로만 보지 않고 대응시야를 넓혀 놓았으며, 향후 한일관계에 '조용한 외교'가 도움이 되느냐는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