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원의 횡령 혐의를 받아온 정몽규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회장이 비자금 조성을 담당한 임원에게 속아 거액을 떼였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의 처벌 수위도 불구속 기소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현산의 서 모 재무팀장이 1999년 고려산업개발 신주인수권 처분을 통해 얻은 이득 50여억원을 모두 갖고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는 진승현씨 측과 1999년 4월 현산 소유의 고려산업개발 신주인수권을 처분해 50여억원을 챙겼다.

당시 진씨가 대주주로 있던 리젠트 증권과 현산 측은 50여억원을 절반씩 나누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일단 그 돈은 서씨가 무기명 채권으로 바꿔 보관했다.

서씨는 2003년 정 회장에게 "진씨가 돈을 돌려 달라고 한다"고 보고한 뒤 실제로는 채권을 51억원으로 현금화한 뒤 자신의 두 딸 이름으로 된 국내 증권사 계좌에 예치하고 지난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 돈은 수년간 그대로 있다가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올해 3월 이후 인출되기 시작했다.

17일 밤 검찰이 최종 확인했을 때 두 계좌에는 51억원 중 각각 6억원씩 12억원만 남아 있었다.

정 회장은 현재 "비자금 조성은 서씨가 알아서 했으며 나는 사후에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회장의 횡령 혐의에 자신 있다던 검찰도 이날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서씨의 죄질이 나쁘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검찰은 정 회장이 비자금을 모두 서씨에게 떼인 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 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