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일제히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가뜩이나 불안정한 한국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는 하반기 중에 정점을 찍고 내려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국제유가가 경기하강을 가속시킬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은 계속 내려오고 있으며 미국경제도 부동산버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등 다른 대외변수도 안정적이지 않다.

또 국내에서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당 간 폭로전이 본격화되고 있는가 하면,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서는 현상이 뚜렷해지는 등 국내외에서 악재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 국제유가 70달러 시대..당분간 강세전망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원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도입 가격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17일 배럴당 64.71달러를 기록, 이달 들어서만 네 차례나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현물가도 작년 8월30일 기록한 사상 최고가인 69.84달러를 넘어 70.29달러까지 치솟았고 북해산 브렌트유도 70.60달러를 기록하는 등 국제유가가 70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최근의 유가 강세는 이란 핵문제가 심리적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나이지리아에서 반군 문제로 하루 56만배럴의 원유 공급차질이 2개월 가량 지속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세계 석유제품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미국의 휘발유 재고가 최근 3주 새 1천만배럴이 줄어들면서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국제유가 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유가 강세는 당분간 지속돼 WTI를 기준으로 배럴당 80달러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도 최근 민관 합동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를 개최한 결과 두바이유가 배럴당 60달러 이상의 강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 앞으로 30일 안에 모든 핵 활동을 중단토록 이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이란 핵문제의 향방이 가려질 5월 초가 국제유가 강세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내수.수출.소비 압박하는 유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 유가는 하반기에 고점을 찍고 하강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경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이 경제성장률을 저하시키고 세계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 급등으로 세계경제가 조정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며 "우리 경제도 성장률, 수출, 내수, 기업채산성, 물가 등에 악영향을 받아 하반기로 예상되는 경기 상승의 정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경제전망을 할 때 이 정도로 유가가 치솟을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유가가 연간 1달러 오르면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원유 수입량은 연간 8억배럴 수준이고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무역수지가 80억달러 가량 악화된다"며 "유가 상승은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성장률도 낮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은 이어 "작년에는 환율이 유가 상승을 상쇄했지만 올해는 이 부분도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작년 기준으로 가계 소비의 8%를 기름이 차지했고 유가가 오르면 다른 부분의 소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소비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며 "유가가 85달러 이상되면 소비회복을 주저앉힐 정도의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 불안한 경기상황


게다가 경제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통계청의 `3월 소비자전망조사결과'에서 소비자기대지수는 103.4로 전월의 103.8보다 0.4포인트 떨어져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특히 월평균 소득 400만원이상 계층의 소비자기대지수는 1월에 111.6이었으나 2월 111.3, 3월 106.9로 내려와 고소득자의 소비심리가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월의 취업자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27만2천명 늘어나는데 그쳐 증가폭이 다시 20만명대로 내려왔다.

취업자 증가폭은 지난 1월에 39만3천명, 2월에 32만7천명이었다는 점에서 지난 3월에는 적지 않게 둔화된 셈이다.

국내외 경제 변수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말에 달러당 1천111.60원이었으나 지난 17일에는 955.60원에 마감됐다.

환율이 하락하면 내수를 자극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수출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의 채산성도 악화되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8.31대책에 이어 3.30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아직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로전에 나서면서 경제문제에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 저에너지 구조로 전환해야

국제유가는 외생 변수인 만큼 국가차원에서 통제하기 어렵기는 하다.

그러나 국제유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유가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소비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를 저에너지 구조로 전환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 원 연구위원은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높다 보니까 한계는 있지만 저에너지 구조로 전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기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에너지 절약과 대체 에너지 개발, 공급선 다변화 등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산유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유사시에도 석유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위험회피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고유가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